(「법보신문」2015년 3월 11일자)

<장휘옥·김사업이 쓰는 '벽암록'>



10. 제1칙 무제와 달마의 문답 (7)



"고작 한바탕 개망신 당하더니 갈팡질팡하는군"



                                                장휘옥·김사업 |www.ogokdo.net



(승인 2015..03.11 10:23:51)

▲ 달마대사의 안심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은 혜가 스님은 스승 곁에서 6년여의 수행 끝에 인가를 받고, 소림사가 있는 숭산 오유봉 건너편의 소실산 발우봉으로 수행처를 옮겼다. 사진은 혜가 스님이 상주했던 이조암(二祖庵).

<본칙> 달마대사는 마침내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 갔다. (착어 ← 이 사이비 중아, 한바탕 개망신을 당한 것이 고작이구나. 서(西)에서 동(東)으로, 동(東)에서 서(西)로 갈팡질팡하는군.)

선과 인연 없는 무제 떠난 달마
미적미적 않고 곧 북위로 향해
숭산 소림사서 9년 동안 면벽
이조 혜가에 안심법문 등 지도

‘사이비 중’이라 꾸짖는 원오
장님 같은 이들의 입장서 언급
스스로 자문케 하는 역설 화법
끊임없는 참구 당부하는 심정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정 오고 감 초월한 달마에게
편치 않은 마음 구한 이조 혜가
“마음 구하는 자는 누구인가?”
 

 달마대사는 두 번째 화살인 “모른다”마저도 소용이 없자 선을 펼치기에는 아직 기연(機緣)이 무르익지 않았음을 알고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북위)로 갔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미적미적하지 않고 곧바로 양나라를 떠나 버린 것에서 역시 달마대사다운 면모를 볼 수 있다.

당시 중국은 남북조시대(420~589)로, 양자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어 여러 나라가 흥망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 시대에 양자강 남쪽에 세워졌던 왕조들을 총칭하여 남조라 하고, 양자강 북쪽의 왕조들을 통틀어 북조라 부른다. 강북의 북조는 북방민족이 세운 나라들로서, 북위(386~534), 동위(534~550), 서위(535~556), 북제(550~577), 북주(556~581)의 다섯 왕조가 흥망을 이어갔다. 강남의 남조는 한족이 수립한 송(420~479), 제(479~502), 양(502~557), 진(557~589)의 네 왕조를 말하며, 이들 네 나라가 차례로 흥망을 반복했다.

남북조시대에는 두세 번의 폐불 사건이 있었지만 역대 왕들 거의 대부분 불교에 대해 보호정책을 폈다. 때문에 이 시대에 불교는 대단한 발전을 이루어 중국불교는 그 기초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달마대사의 전기는 명확하지 않다. 이 연재 글은 그의 전기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화두 참구의 방향 제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화두는 수행자를 모든 집착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있다. 때문에 화두 내용의 실화(實話) 여부가 화두의 진가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벽암록’에 언급된 달마대사의 행적과 관련된 내용만 다루기로 한다.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왔다고 추정되는 시기를 전후해서 남북조의 상황을 짚어 보면 이렇다. 강남에는 양나라의 불심천자 무제(재위: 502~549)가 수도 건강(建康, 지금의 강소성, 南京)을 중심으로 불교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찬란한 남조문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강북에서는 북위의 효문제(재위: 471~499)가 493년에 수도를 산서성의 평성(平城, 지금의 대동, 大同)에서 하남성의 낙양(洛陽)으로 옮겼다. 그는 개혁정치를 실시하여 북방민족과 한족의 대융합을 도모하고 정치·경제·문화에서 큰 발전을 이루어 문화정치의 번성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북위 불교의 융성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으며, 양나라 불교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북위 때 유명한 운강(雲崗)석굴이 대동에 조성되었으며, 낙양의 용문(龍門)석굴이 조성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북위시대 때의 일이다. 전성기 시절 북위의 수도 낙양에는 1367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니 북위 불교가 얼마나 번성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달마대사가 조금도 미련을 갖지 않고 곧바로 양나라를 떠나 버린 것에 대해 원오 선사는 호되게 꾸짖는 착어를 붙이고 있다. “이 사이비 중아, 한바탕 개망신을 당한 것이 고작이구나. 서(西)에서 동(東)으로, 동(東)에서 서(西)로 갈팡질팡하는군”이라고. 원오 선사가 이처럼 달마대사를 폄하하는 까닭은 어디 있을까?

‘깨달은 자(覺者)’를 다른 말로 ‘눈뜬 자’라 한다. 깨달은 자, 즉 부처(佛)를 ‘눈뜬 자’라 한다면 깨닫지 못한 우리는 장님이다. 부처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장님의 세계에 살고 있다.

‘장아함경’ 권19 ‘세기경’에 유명한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가 나온다. 코끼리를 알지 못하는 장님들에게 코끼리를 만져 보게 한 뒤, 코끼리의 모습에 대해 물었다. 머리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솥같이 생겼다 하고, 배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벽같이 생겼다고 하는 등 제각각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우기며 다투고 싸우기까지 했다.

눈뜬 사람이 코끼리의 진짜 모습을 이들에게 말해 주면, 그들은 그 말을 믿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엉터리라고 비웃을지 모른다. 자신이 장님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한, 어둠에서 벗어나기는 영원히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인도에서 중국으로 선법을 전하러 온 달마대사. 그는 불심천자 양무제와의 문답에서 그의 선적 역량을 시험하기 위해 두 차례나 찔러 보았으나 양무제에게서 어떤 선기(禪機)의 번뜩임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녕 눈뜬 자와 장님의 만남이었다. 참으로 고생 천만, 소득 없는 일을 한 것이다. “이 사이비 중아, 한바탕 개망신을 당한 것이 고작이구나” 하고 달마대사를 몰아붙이는 원오 선사. 이렇게 대갈일성(大喝一聲) 하는 그의 심중을 아는가?

아무리 일러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 눈은 뜨고 있지만 장님과 다름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눈에는 괴상한 말만 남긴 채 떠나가 버린 달마대사가 한바탕 개망신만 당한 사이비 중으로 보일 것이다. 그들의 심중을 꿰뚫어 본 원오 선사는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말한다. “이 사이비 중아, 한바탕 개망신을 당한 것이 고작이구나”라고. 이렇게 말함으로써 원오 선사는 되묻고 있다. 진정 한바탕 개망신 당한 것이 누구인지 알겠는가?

개망신 당한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원오 선사의 심정. 그의 처절하리만큼 안타까운 심정이 와 닿는다면, 화두 들기를 게을리하지 말라. 삼백 육십 뼈마디와 팔만 사천 털구멍을 총동원해서 온몸 전체로 끊임없이 참구하고 참구하라.

달마대사는 지체 없이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 갔다. ‘수상청청취 원래시부평(水上靑靑翠 元來是浮萍).’ 부평초는 원래 부평이라, 물의 흐름에 따라 어디로 흐르든 언제나 푸르다. 대수롭지 않게 표표히 양자강을 건넌 자, 그는 누구인가? 일이 있으면 왔다가 일이 다하면 훌쩍 떠날 뿐, 마음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없다.
  

▲ 중국 숭산 소림사 달마대사상.

말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왔고, 다시 양나라에서 위나라로 갔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 말대로 달마대사가 오고 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달마대사 자신은 오지도 않았고 가지도 않았다. 왜 그럴까?

아무런 잡념 없이 황혼을 바라볼 때 ‘나’는 없다. 황혼이 전부이고, 황혼이 곧 ‘나’이다. 달마대사에게는 온 우주가 ‘나’이다. 온 우주가 ‘나’인데 어디로 가고 어디서 온다는 말인가? 양나라에서 위나라로 간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간 적이 없다. 마찬가지로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온 적이 없다.

진정 오고 감을 초월한 자는 왔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고, 갔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오고 간다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 말에 걸리지 않는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온 우주가 ‘나’ 아닐 때, 우주는 이곳과 저곳으로 나뉘어 집착되고 만다. 이때 오고 감이 있다. 서울과 강릉이 두 곳으로 나뉘지 않으면 ‘서울에서 강릉으로 간다’든가 ‘강릉에서 서울로 온다’가 성립할 수 없다. 중생들은 ‘원래 하나인 세계’를 수천수만으로 나누어 서로 비교하고 우열과 친소를 따지며, 따진 그대로 진실이라고 집착한다. 그래서 서울에서 강릉으로 간다 하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다고 말한다. 원래 세계는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건만, 중생들은 이 말대로 분주하게 오고 간다.

이렇게 ‘원래 하나인 것을 나누어서 별개로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분별(分別, vikalpa)’이다. 말(언어)에 의해 낱낱으로 나뉘므로, 분별은 ‘말(말에 의거한 생각·판단)이 보여 주는 그대로 세상이 실제로 그렇다고 보는 것’이다.

달마대사가 서(西)에서 동(東)으로, 동(東)에서 서(西)로 갈팡질팡한다고 착어한 원오 선사. 장님과 같은 우리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그 말 너머에 있는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원오 선사는 기대하고 있다. ‘서에서 동으로, 동에서 서로’ 아무리 오고 가도, 오고 간 적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당부하고 있다.

위나라로 간 달마대사의 행적에 대해, 원오 선사는 평창(해설)에서 “달마대사는 위나라에 도착하자 효명제(孝明帝, 재위: 515~528)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고 곧장 소림사로 갔다. 그곳에서 9년간 면벽(面壁)하면서 이조(二祖, 혜가)를 지도했다”고 제창했다. 양자강을 건넌 달마대사는 낙양 근처의 숭산(嵩山)에 있는 소림사로 갔다. 면벽 9년. 늘 ‘이 순간 이 자리’에 앉았을 뿐인 면벽 9년.

달마대사의 법을 이어 중국 선종의 제2조가 된 혜가대조(慧可大祖, 487~593) 선사. 하남성 낙양 인근 출신인 그는 달마선사에게 ‘혜가’라는 법명을 받기 전까지는 신광(神光)이라 불렸다. 어릴 적부터 의지와 기상이 특출하고 유교와 노장 등 현묘한 이치에 밝았다. 나중에 불서를 보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 출가했다.

신광의 나이 40세 때, 소림사의 달마대사를 찾아갔다. 달마대사에게 아침저녁으로 간절히 물었으나, 대사는 늘 벽을 향해 앉아 있을 뿐 아무런 가르침도 듣지 못했다. 12월9일 밤,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다. 신광은 똑바로 선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스름한 새벽녘에는 눈이 무릎 너머까지 쌓였다.

신광은 몰래 칼을 꺼내어 자신의 왼쪽 팔을 잘라 달마대사 앞에 내놓았다. 이를 보고 제자로 받아들인 달마대사에게 신광이 물었다. “제불(諸佛)의 정법을 들을 수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제불의 정법은 남에게 얻는 것이 아니다.”

신광이 다시 말했다. “제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부디 편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대사가 말했다.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하게 해 주마.” 역시 달마대사다.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구하는 자는 누구인가?

오곡도명상수련원 원장 www.ogok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