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당신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그 화살은 비난의 화살 그대로 당신에게 꽂히는가? 아니면, 당신의 품성을 더욱 청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가? 후자의 경우라면 비난의 화살은 당신 가까이에서 꽃으로 변한 것이다.
| 처세술과 테크닉만 찾는 세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가 쏜 비난의 화살을 비난의 화살 그대로 맞고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 아픔에 시달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에 대한 증오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모든 관심은 그 비난의 허위성을 증명하는 데로 쏠린다. 허위성을 입증할 나름대로의 이유와 변명이 하나 둘 갖추어지면 상대에 대한 증오의 뿌리는 더 깊고 강해진다. 미워해도 된다는 정당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법의 복수가 그 뒤를 잇고, 그 복수에 대한 상대의 복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교묘히 피하는 법이나, 화살을 쏜 상대에 대처하는 방법 등 그때그때의 처세술이나 테크닉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것에만 매달린다면 비난으로부터의 영원한 자유는 없다. 비난을 포함해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비난에서 교묘히 벗어나기 위한 처세술이나 테크닉만 찾고 있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피하려고 하는 지금의 이 마음 때문에 비난도 사게 된 것은 아닐까? 전이나 후나 마음은 그대로인데 어떻게 비난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15년 전에 상연되었던 ‘더 비치The beach’라는 영화가 있다. 대략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청년 리처드는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모험을 찾아 태국으로 간다. 거기서 지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낙원, 완벽한 해변을 갖추고 있으며 외부인이나 관광객들로부터 한 점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리처드는 그가 오랫동안 찾고 있었던 ‘뭔가 다른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그곳을 향해 모험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자신처럼 여행자 신분으로 들어와서 비밀스럽게 모여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발견한다. 리처드는 그들에게서 환영을 받고, 그때부터 그 환상의 해변은 그에게 낙원이 된다. 그러고는 서서히 그는 자신이 떠나왔던 문명세계를 잊는다.
그러나 그가 낙원이라고 생각했던 이 해변의 세계도 사실은 결코 완벽하지도, 환상적이지도 않았다. 잦은 마찰과 질투심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는 험상궂은 대립이 생겼다. 어느 날 리처드는 피비린내 나는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그가 꿈꾸었던 환상은 순식간에 악몽으로 둔갑한다. 낙원은 지옥으로 돌변한다. 이제 그의 유일한 목표는 그곳을 탈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섬에 들어가기보다 그곳을 떠나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아무리 외부 환경이 이상적이라고 해도 인간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낙원은 어디에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낙원조차도 지옥으로 만들고 만다.
누군가가 돈과 주택과 자녀양육 문제 등으로 괴로워한다고 하자. 그런 그가 이런 문제가 전혀 없는 지상낙원에 들어갔다. 지긋지긋했던 문제들에서 해방되었으니 얼마간 그는 행복을 만끽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은 바꾸지 않고 몸만 들어가는 한, 그의 어리석음과 탐욕은 또 다른 대상을 찾아 그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지위와 명예, 남녀 간의 애정관계 등이 새로운 문제로 등장할지 모른다. 마음의 눈은 뜨지 않고 처세술과 테크닉만 찾으려 한다면 괴로움과 갈등의 종식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 비난은 공空하다
마음의 눈을 뜨고 의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테크닉의 암기가 아니라 문제를 꿰뚫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불교가 말하는 지혜에 대해 귀를 기울여 보자. ‘일체개공一切皆空’, 모든 것은 공하다. 비난도 공하다. 비난은 비난이라는 자성・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쉽게 말하면, 비난은 비난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석가모니 가까이 날아간 화살이 꽃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모든 것은 공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물은 그 모양이 고정되어 있지 않듯이, 비난 또한 어느 것으로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것은 비난일 수도 있고, 자신의 인격 향상을 돕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그 비난의 말을 계기로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보고 방향을 전환하여 향기로운 인생의 길을 가게 되었다면, 그것은 비난이 아니라 영혼을 맑히는 빛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보왕삼매론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곤란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 근심과 곤란이 도리어 거만과 사치를 얼씬도 못하게 하는 스승이 되기도 한다.
일체개공一切皆空, 하루를 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의 공空함을 보는 각성이 중요하다. 자석 주위에는 늘 자기장이라는 힘이 작용하듯이 우리 의식에는 항상 공이라는 각성이 살아 움직여야 한다. 공의 눈으로 보고, 공의 귀로 들으며, 공의 마음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인식이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 즉 ‘지혜의 완성’ ‘완전한 지혜’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까?
공空이란 이론적으로는 자성・실체가 없다는 ‘무자성無自性’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상세히 언급했다. 실천적 측면에서 공을 말한다면, 그것은 ‘무집착無執着’이다. 공 그대로 산다는 것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산속의 암자 생활은 도인에게는 극락이었고 거사에게는 지옥이었지만, 실상은 극락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었다. 극락에는 극락이라는 자성・실체가 없고, 지옥에는 지옥이라는 자성・실체가 없다. 그래서 극락도 공하고, 지옥도 공하다. 이렇게 공하다고 철저히 알았다면 그곳을 극락이라고도 지옥이라고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공의 실천이며, 공의 삶이자 반야바라밀다의 삶이다.
공의 사고방식과 삶을 ‘중도中道’라고도 한다. 중도는 ‘양 극단에 치우침이 없는 바른 길’을 뜻하며, 불교의 기본적이며 중요한 용어 중의 하나이다. 여기서 치우침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이것과 저것의 중간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과 저것, 양자 모두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 곳에 저절로 나타나는 사고방식이자 삶의 방식이다.
극락과 지옥에 대한 중도는 극락과 지옥의 중간적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극락과 지옥에 대한 집착에서 완전히 떠났을 때 나타나는 경지이며 삶이다. 1과 3의 중도는 양자의 단순 평균인 2가 아닌 것이다. 1이나 3, 그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것이 중도다. 허공은 불에도 타지 않고 비에도 젖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중도의 삶은 극락과 지옥, 비난과 칭찬 그 어느 것에서도 자유롭다.
| 맨눈으로 보는 것의 어려움
- 화두가 있는 이유
“상대방의 비난을 충고로 받아들여라.”라는 말을 누구나 한두 번은 들었을 것이다. 이 말은 상대방의 언사를 ‘비난’으로만 받아들여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공의 지혜와 중도의 실천으로 이끄는 보배와 같은 명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누군가의 말이 실로 거짓과 악의로 가득 찬 비난이어서, 그런 말을 한 당사자를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구제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때도 “상대방의 비난을 충고로 받아들여라.”를 금과옥조로 여긴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어떤 말이나 생각을 모든 경우에 항상 통용되는 규정이나 결론으로 붙들고 있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그것은 집착이다. 공과 중도의 살아있는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반야바라밀다, 즉 완전한 지혜는 어떤 결론의 맹목적인 추종이 아니다. 반야바라밀다는 오히려 모든 결론에서 자유롭게 되었을 때 순간순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통찰력이다. 과거에 내린 결론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에 걸리지 않고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이다. 진정한 자비와 사랑도 이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요지부동의 결론을 찾고 거기에 안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당장은 결론에 맞춰 기계적으로 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결론이 없으면 도리어 불안하고, 이러한 결론들로 자신을 보호하는 방패로 삼는다. 이 방패가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손상될 낌새가 보이면 그것을 굳건히 지켜줄 책의 내용이나 누군가의 말로 또 하나의 방패를 덧씌운다. 그렇게 하는 만큼 이미 형성되어 있는 집착은 점점 더 강해져 가고, 사고는 경직되어 간다.
기존의 결론에 틀어박혀 그것으로만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생의 삶이다. 새로운 결론이라 해도 알고 보면 기존 결론의 울타리 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중도・반야바라밀다는 끊임없는 ‘무집착’의 작용이다. 기존의 결론과 규정에 갇히지 않고 늘 맨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선 수행에서는 어떤 것에 대해 “이것이다.”라고 규정하여 자리 잡으려고 하는 순간 눈 밝은 스승으로부터 가차 없는 죽비를 맞는다.
자신이 보배처럼 여기고 있는 결론, 예를 들어 “나는 ○○이다.” “인생에서 최고는 ○○이다.” 등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힘들게 얻은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해탈로 가는 문이라는 예지를 얻은 사람은 끝내 옆길로 새지 않고 반야바라밀다의 길을 간다.
그런데 모든 결론에서 자유롭게 되어 맨눈으로 보고자 한다고 해서 생각대로 그렇게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지금 상대가 하는 말을 맨눈으로 듣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자신을 맨눈으로 본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실제로 맨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가?
선에서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두는 있는 그대로를 보게 한다. 바꾸어 말하면, 화두는 맨눈으로 보고 듣게 만든다. 그렇게 해야만 화두는 뚫리기 때문이다. 다음의 화두를 보라.
| 어떤 것이 당신의 진짜 모습인가?
선종禪宗의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6조 혜능(六祖慧能, 638-713) 선사. 그는 중국 남쪽 광동성 신주新州 출신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시장에서 땔나무를 팔아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어느 날, 나무 판 돈을 받고 되돌아 나오는데 『금강경』 독송 소리가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끌려 듣고 있는 사이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즉 “집착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라는 구절을 듣는 순간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 독송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 경전의 입수처를 물으니, 호북성 황매현의 빙무산에서 달마 대사의 법을 이은 5조 홍인 선사에게서 받았다고 했다.
혜능은 홍인 선사를 찾아갔다. 20~30대 초반의 초라한 청년 혜능을 본 홍인 선사는 그의 종교적 천재성을 알아보고 방아 찧는 일을 하면서 수행할 것을 허락했다. 혜능은 오로지 방아만 찧으면서 어떤 것도 구하지 않았다.
8개월 후, 홍인 선사는 “불법의 대의를 깨달은 자가 있으면 게송을 지어 제시하라. 그에게 가사와 법을 전하여 6조로 삼겠노라.”고 했다. 7백여 명의 제자 가운데 최고 상수이고, 대중들의 깊은 존경을 받던 신수神秀 선사가 먼저 게송을 지어 게시했다. 그러나 홍인 선사는 신수의 뒤를 이어 게송을 게시한 혜능의 경지가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혜능은 아직 행자에 불과했다. 홍인 선사는 야밤에 몰래 혜능을 불러 법을 전하고 그 징표로 자신의 의발衣鉢을 건네주면서, 그곳을 속히 떠나 시기가 성숙될 때까지 몸을 숨기라고 했다.
혜능이 황매를 떠나자, 대중은 일개 행자가 전등傳燈의 상징인 의발을 받아간 것을 알았다. 많은 대중이 의발을 뺏기 위해 혜능을 뒤쫓는데, 이 중의 한 명이 무장武將 출신인 혜명慧明 상좌이다.
혜능 선사는 혜명 상좌가 대유령이라는 고개까지 뒤쫓아 온 것을 보고, 의발을 바위 위에 던지며 말했다. “이 가사는 불법의 신표이네. 힘으로 뺏을 것이 아니니 그대가 가져가게.” 혜명이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것은 산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혜명은 머뭇거리며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다. “저는 법을 구하러 온 것이지 가사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혜능 선사가 말했다.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마라. 바로 그럴 때, 어떤 것이 혜명 상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혜능 선사의 바로 이 말이 참구해야 할 화두이다.
화두 속의 등장인물을 나와 관계없는 먼 옛날 사람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순간의 내가 화두 속 상황의 그가 되어 화두 속의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두는 생명 없는 옛날이야기나 문학작품으로 끝나 버린다. 당신은 한 치의 간격도 없이 지금 상황의 혜명 상좌가 되어야 한다.
의발을 찾으러 쫓아온 당신. 선악도 생각하지 말고, 고귀함과 추함도 생각하지 말고, 모든 규정과 결론에서 자유롭게 되어라. 이때 당신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인가? 알았거든 지금 당장 보여 봐라.
과거의 결론에 붙들리지 말고 진실만을 보라. 지금 본 진실을 결론으로 고정시키지 말고 다음의 진실을 보라. 결론의 끈에 발이 묶인 초라한 새가 되지 말라.
장휘옥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하여 석사 과정 졸업. 이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 화엄 사상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불교학개론 강의실 1, 2』, 『무문관 참구』(공저),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 등 1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중국불교사』 등을 번역했다.
김사업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한 뒤, 유식 사상을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 취득.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공저), 『무문관 참구』(공저), 「유식설에서의 연기 해석」, 「선과 위빠사나의 수행법 비교」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