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유학 시절 나(김사업)는 임제종 대본산 쇼코쿠지(相國寺) 선방에 가끔씩 들러 좌선을 하곤 했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집은 학교와 쇼코쿠지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동쪽으로 7~8분을 가면 학교가 있었고, 서쪽으로 12~13분을 가면 쇼코쿠지가 있었다.
간화선 수행을 종지로 하는 일본 임제종에는 14개의 대본산이 있다. 쇼코쿠지는 그중의 하나에 속하는 대찰이다. 쇼코쿠지의 말사 가운데 유명한 사찰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금각사(金閣寺, 일본명 킨카쿠지)와 은각사(銀閣寺, 긴카쿠지)이다. 이 쇼코쿠지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하나는 한국문학사에 빛나는 두 시인 정지용(1902~1950)과 윤동주(1917~1945)가 일제강점기 시절에 다녔던 도시샤(同志社)대학이 바로 쇼코쿠지의 담장 너머에 있다는 것이다. 도시샤대학은 그 당시에도 자유주의와 국제주의를 표방한 명문 사립대였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정지용은 서울의 휘문고보를 졸업한 이듬해인 1923년, 휘문고보의 장학생으로 이 대학 영문과에 입학해 1929년 졸업과 함께 귀국했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1941년 12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그해 10월 교토의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편입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3년 7월 여름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떠나기 전 그는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해방되기 직전인 1945년 2월에 이국의 감옥에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쳤다.
도시샤대학 교정에는 두 시인의 시비가 약 10m의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다. 윤동주의 시비에는 친필로 된 그의 ‘서시’가 새겨져 있고, 충북 옥천산 흰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정지용의 시비에는 그의 시 ‘압천鴨川’이 새겨져 있다. 도시샤대학은 두 시인을 학교의 자랑으로 생각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자유주의와 국제주의를 표방한 명문 도시샤대학으로 유학을 갔고, 후에 이름을 남긴 이도 많았다.
자전거를 타고 쇼코쿠지로 가는 길은 교토 시내를 관통하는 하천 가모가와(鴨川)를 건너 도시샤대학 옆을 지나갔다. 학교 옆을 지나갈 때면 묘한 감정이 일어나곤 했다.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하는 윤동주의 ‘서시’가 떠오르기도 하고, 유학 시절에 지었다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 젖기도 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향수는 바로 나의 향수였다. 그들의 그리움과 사연과 애환이 묻은 길을 따라 나는 쇼코쿠지로 갔다. 그들도 이 절에 들렀을까?
쇼코쿠지와 관련된 또 하나의 강한 인상은 경내에 걸려 있던 ‘즉신설법卽身說法’이라는 큰 글씨를 보았을 때 받았던 묵직한 깨우침과 감동에 있다. 즉신설법, 곧 ‘온몸으로 법을 설한다’라는 뜻의 이 글은 학문적 불교에 치중하고 있던 나를 향해 그야말로 온몸으로 법을 설하고 있었다. 머리로만 이해하고 입으로만 읊는 불교가 아니라 온몸으로 법을 설해야 진정한 불교이거늘….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즉신설법인가?
| 집착함이 없이 행동한다는 것
『금강경』에 유명한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라는 구절이 있다. 머무는 바가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는 뜻이다. ‘머무는 바가 없이’는 ‘집착함이 없이’를, ‘마음을 내어야 한다’는 ‘행동해야 한다’를 각각 뜻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집착함이 없이 행동해야 한다’라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응용적・각론적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집착함이 없이’가 색즉시공에 해당하고, ‘행동해야 한다’가 공즉시색에 해당한다.
우리는 집착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공부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면 숫제 공부를 하지 않으려 하고, 돈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면 돈 버는 일을 아예 그만두려고 한다. 그런데 어떤 것에 매달리는 것도 집착이지만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집착이다. 매달림과 거부, 그 어느 쪽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것이 중도이다. 해야 할 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성실히 벌어야 한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손을 동시에 사용하여 괴로움에 허덕이는 수많은 중생을 구제한다. 하나의 손에만 집착하여 마음을 거기에만 머문다면 천 개의 손을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 천 개의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의 자비행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마음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집착하지 않을 때가 가장 자유롭고 가장 일이 잘될 때이다.
우리는 한 손에만 마음을 머물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과 억울함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생각만 절대적으로 맞다 하여 거기에 꼼짝없이 묶여 있거나, 사람과 사물을 볼 때 매번 똑같은 면과 동일한 느낌만 로봇처럼 보고 느끼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게 보고 느낀다면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딱딱한 암석이 굳게 자리 잡고 있듯 자성화되어 버린 고정관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고정관념으로 인해서 좋은 것에는 정신없이 매달리고 싫은 것은 절대 수용하지 않으려는 강렬한 욕망의 기계적 반응이 우리의 마음속에 시시각각으로 일어난다. 이 강렬한 욕망의 흐름과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를 본인이 직접 생생하게 본 적이 있는가? 어떤 대상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못하는 집착이 욕망의 뒤를 따르고, 그로 인해 온갖 고통과 망상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엄청난 에너지로 진행되는 이 일련의 과정의 반복에 의해 우리들의 삶은 진행되고 있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이 일들을 순간순간 아무런 조작 없이 여실지견如實知見, 즉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라. 우리는 진리의 숭배자가 아니라 쓸데없는 생각과 집착의 숭배자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업장 덩어리의 허망한 생만 남을 것이라는 위기감도 들 것이다.
이곳 오곡도 수련원에서는 울력을 자주 한다. 울력은 선원의 모든 대중이 함께 모여 농사 짓기, 대청소, 안팎의 정비 등 선원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육체적인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백장(百丈懷海, 749~814) 선사의 유명한 말처럼 선에서는 전통적으로 울력을 중시해 왔다. 울력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마련하고 외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수행처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급자족의 정신이 들어 있다.
인도나 남방불교의 수행승들은 생활을 전적으로 신자들의 보시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울력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러나 풍토와 관습이 다른 중국으로 불교가 전해지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현실성이 강한 중국의 수행승들은 선방에서 좌선만 할 것이 아니라 농원이나 산림에서 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일상생활의 일거일동이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이거나 깨달음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상생활의 모든 시간과 공간이 깨달음의 장이어야 했기 때문에 중국의 선사들은 제자들이 일하는 중에도 화두를 생생하게 들거나 일에 묵묵히 몰두하여 ‘일’삼매에 들게 했다. 선의 전통에서 울력은 좌선의 동적인 형태로 자리 잡아 간 것이다.
오곡도 수련원의 울력 때는 분위기가 좋다. 화두를 들며 묵언 속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주말수련회 같은 때는 오래간만에 만난 도반들이 자연스레 장 원장님 주위에 다정스럽게 모여 일을 한다. 일을 하면서 원장님의 유머에 깔깔 웃기도 하고 정담을 나누기도 한다. 놀라운 것은 울력 시간 내내 다들 즐겁게 그것도 자진해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울력에 참가한 분들의 말에 따르면,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여기서처럼 즐겁게 솔선해서 일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직장에서 이런 대가 없는 일을 해야 한다면, 대번에 ‘노동력 착취다’, ‘왜 내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일어나고 당연히 일은 짜증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호미 들고 밭을 매는 이 단순한 일을 하는 데도 우리는 너무나 생각이 많다. 이 쓸데없는 생각들 때문에 우리는 ‘그냥’ 일을 할 수 없고 마음은 필요 없이 골병이 든다.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생각이 일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따지고 생각해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슨 일에나 생각이 많다. 마음은 고요히 있지 않고 늘 잡동사니 생각을 재잘거리고 있는 것이다. 울력이 즐겁고 자발적인 것은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그쳤기 때문이다. 이 울력이 집착 때문에 하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밭을 맨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집착함이 없이 행동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 그냥 맨눈과 맨몸으로 보고 듣고 일한다
‘월천담저 수무흔月穿潭底 水無痕’이라는 게송이 있다. ‘달빛이 연못의 깊은 바닥까지 비추고 있으나 물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네’라는 뜻이다. 달빛이 바닥까지 물을 뚫고 지나가고 있으나 물에는 아무런 상처나 흔적이 없다. 비추나 비춘 흔적이 없는 달빛, 있으나 없는 것 같은 달빛. 온통 달빛뿐이지만 달빛으로 인한 저항이나 걸림은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바로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경지이다.
좌선을 체험해 보면 지금 말하고 있는 내용을 잘 알 수 있다. 화두 삼매에 들어 화두만 성성할 때 어떤 생각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좋다 싫다도 없고, 어떤 욕망도 집착도 없다. 화두를 드는 나는 물론이고 화두조차도 없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이다. 화두를 들고 있으나 화두를 포함한 어떤 무엇에 대한 집착도 없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으로 하는 행동이 즉신설법, 곧 온몸으로 법을 설하는 것이다. 한 수행자가 사랑하는 남편을 사고로 잃은 부인을 만났다. 연못 바닥까지 온통 달빛뿐이듯이, 그는 그 부인의 슬픔 그 자체가 되어 눈물을 글썽이며 “부디 어려움을 이겨내시고 힘을 내십시오.” 하며 합장하고 머리 숙였다. 어떤 가식도 의도도 없었다. 자신의 행동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온몸으로 법을 설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팔만 사천 법문이 이 속에 다 있다.
위와 같은 마음으로 밭을 맨다면 그것이 곧 즉신설법이다. 주부가 이 같은 마음으로 저녁상을 차린다면 그것 또한 즉신설법이고, 식당 주인이 그와 같이 손님을 맞는다면 그 역시 즉신설법이다.
‘응무소주 이생기심’에 대해 어느 선사는 이렇게 읊었다.
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데(不知何處寺),
바람에 실려 종소리가 들려온다(風送鐘聲來).
종소리는 있는데 소리가 난 곳은 모른다. 청소하고 빨래는 하는데 하는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해, 어떤 관념이나 의도・집착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해야 하고 저것은 말아야 한다는 미리 정해 놓은 부동의 판단도 없다. 시비是非・선악善惡・호오好惡・득실得失에 관한 일체의 고정된 생각도 없고, 이에 대한 상습적인 반응도 멈추었다. 그냥 맨눈과 맨몸으로 고요하게 보고 듣고 일한다.
직전의 2월호에서 어느 주부 수행자의 편지글을 소개한 바 있다. 사고를 당해 17번의 수술을 받으며 투병 중이던 부군을 간호하며 가정을 꾸려온, 심성 착한 이분의 수행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글을 읽은 오곡도 수련원의 거사 한 분이 수련원으로 전화를 걸어 왔다. 그와 주부는 면식이 없는 사이였다. 전화를 건 용건은 편지 주인공의 사연이 참으로 애틋하여 그분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이라도 대신 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직감적으로 사양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전화를 걸어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뜻은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려운 사람들도 열심히만 하면 학업을 이어 나갈 수 있을 만큼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습니다. 나라에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저희보다 더 어려운 분들에게 그 뜻이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가식 없는 정중한 사양이었다.
내게는 이 두 분의 말이 즉신설법으로 들려왔다.
현관 문밖에서 누가 초인종을 눌렀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실천하는 것인가? 지금 당장 보여 보라.
장휘옥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하여 석사 과정 졸업. 이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 화엄 사상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불교학개론 강의실 1, 2』, 『무문관 참구』(공저),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 등 1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중국불교사』 등을 번역했다.
김사업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한 뒤, 유식 사상을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 취득.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공저), 『무문관 참구』(공저), 「유식설에서의 연기 해석」, 「선과 위빠사나의 수행법 비교」 등이 있다.
위의 두 사람은 전문 수행자의 길을 걷기 위해 2001년 함께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의 오곡도로 들어갔다. 이후 세계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수행했으며, 2003년부터는 간화선 수행에만 전념하여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의 다이호(大峰) 방장 스님 지도로 900여 회에 이르는 독참을 통해 피나는 선문답을 나누며 수행해 왔다. 간화선 수행 전문도량 ‘오곡도 명상수련원’(www.ogokdo.net)을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