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불교개론 (1) 

장휘옥·김사업

안녕하세요. 1992년 10월에 『불교학개론 강의실 J301』을 펴낸 장휘옥입니다. 이 책을 집필할 당시는 대학을 ‘학문을 연구하는 상아탑’이라 부르던 말이 살아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교정에는 민주화운동으로 얼룩진 부분도 있었지만, 교양으로 철학이나 종교 등 인문학 관련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개똥철학(?)을 논하며 젊음의 열정을 발산하곤 했습니다. 
 

불교종립대학인 동국대학교에서 불교개론은 교양 필수과목이었습니다. 강의를 맡았던 저는 불교개론이라는 생소한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학생들이 ‘불교에 대한 저항감을 불식하고, 올바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기를 원했으므로, 불교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때 강의한 노트를 정리해서 출판한 것이 『불교학개론 강의실 J301』입니다.     
 

그 후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20세기라는 거대한 한 세기를 넘기면서, 세기말에 나타나는 말세적 현상이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불길함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대망의 21세기는 그런 루머와는 상관없이 ‘변혁의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 변화는 물론, 불교에 관한 새로운 학설이 발표되면서 『불교학개론 강의실 J301』의 내용도 수정・보완해야 할 부분이 생겼습니다. 더구나 정보전달 매체의 급속한 발달로 인터넷에는 불교 지식의 정보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제 지식 전달보다는 삶과 세계를 바로 보는 일척안一隻眼을 뜨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불교개론서의 핵심적 역할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불교학개론 강의실 J301』의 내용을 새롭게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침 불광미디어의 요청이 있어, 이 시대에 맞는 개론을 집필하기로 했습니다. 불교가 표방하는 지혜와 자비를 바탕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고통에서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자비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가를 심층적으로 파헤쳐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일 년 반 동안 연재한 내용을 한데 모으면 1권의 새로운 개론서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번에는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의 저자 김사업과 공동집필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성원을 바랍니다.

"물이 점차 말라 가고 있는 웅덩이 속의 물고기들이 살려고 펄떡이며 서로 부딪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애착에 몸부림치며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고타마 싯달타)는 어찌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세상은 이르는 곳 어디라도 견실하지 않다. 어느 쪽을 둘러보아도 무상無常하여 흔들리고 있다. 내가 안주할 곳을 찾아보았지만 죽음과 괴로움이 깃들지 않은 곳을 보지 못했다." (『숫타니파타』 936~937 게송)

|    싯달타 태자의 고뇌
생로병사의 고통, 이것을 참고 이겨 낸다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해 고개 숙이고 다니는 자식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흰머리에 주름살투성이인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도, 치매 걸린 노모가 금방 식사하고도 또 밥 달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평생을 함께했던 배우자가 화장장의 불길 속에서 한 줌 재로 바뀌는 것을 보는 것도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행복과 성공을 위해 애를 쓰고 또 애를 쓰지만, 좌절과 실패는 수시로 고개를 내민다. 하나의 마음속에 수많은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내면은 생각들 간의 갈등으로 늘 들볶인다. 도대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은 몇이나 되는지. 수많은 상처 속에 자리 잡은 몇 안 되는 행복을 위안 삼아 살아가고 있지만,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애를 태워야 할까.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념들을 왜 일부러 거론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있는 사실을 피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직시할 때 해결의 문은 열린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인도 북부 히말라야산맥 남쪽 기슭의 조그만 왕국에 태자 한 사람이 태어났다. 그의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달타였다. 나중에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라 불린 분이 바로 그다. 석가모니는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싯달타 태자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생모를 여의고, 계비로 들어온 그의 이모 손에서 성장한다. 

왕위를 물려받을 태자는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최고급 명품 옷을 입었고 아름다운 궁녀들에 둘러싸여 그 시중을 받았다. 그가 머무는 궁전도 세 곳이나 되었다. 그곳의 계절은 여름과 우기와 겨울로 나누어져 있어 각각의 계절에 맞는 궁전에 살았던 것이다. 태자로서 배워야 할 제왕학과 문무에 걸친 특별한 교육도 받았고 재능도 뛰어났다.

싯달타 태자는 섬세하고 감수성 예민한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로서 기품이 있었으나 체력이 그렇게 강인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는 홀로 깊은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소 울적한 분위기의 사색가에 가까웠다. 이런 경향은 성년이 되어 갈수록 심해져 갔다. 

이런 태자를 볼 때마다 부왕은 노심초사했다. 태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인생의 비애를 느낄 만한 일에는 가능한 한 접촉되지 않도록 했으며, 일부러 향락적인 생활을 하도록 유도했다. 10대 후반의 태자를 결혼시킨 것은 당시의 관습이었을 수도 있지만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는 부왕의 노력과도 무관치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태자의 성향은 변하지 않았다.  

태자는 왜 이러한 성향을 띠게 되었을까? 전승되어 온 문헌들에 근거해서 보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중 유력한 몇 가지만 소개한다. 

첫째, 생후 7일 만에 세상을 떠난 생모의 죽음이 태자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계모인 이모가 친어머니 이상으로 잘 보살펴 주었다고는 하지만, 철들기 시작한 태자에게 친모의 부재는 삶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둘째, 태자의 나라는 약소국이었다. 인근의 강대국이었던 코살라의 속국에 가까운 나라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태자가 출가하여 석가모니가 된 후 결국 코살라에 의해 멸망되고 마는 비운을 겪는다. 강대국의 위협을 받는 약소국 태자로서 번민이 많았을 것이고, 이것은 인생 문제에 대해 조용히 홀로 생각하는 그의 성향을 더욱 강하게 했을 것이다.

셋째, 태자에게는 타고난 명상적 기질이 있었다. 태자가 10살 전후의 나이였을 때 부왕을 따라 들로 나가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인 농경제農耕祭에 참가했다. 소들이 쟁기로 밭을 일구자 땅속에서 꿈틀거리며 나온 작은 벌레들을 새가 날아와 쪼아 먹었다. 이를 본 태자는 약육강식의 처참함을 느껴 홀로 근처 숲에 들어가 나무 아래서 깊은 명상에 잠겼다고 한다. 

이런 환경과 성향 속에서 태자는 살아 있는 자라면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비롯한 세상사의 괴로움에 대해 사무친 자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리 고뇌해도 서광은 비쳐 오지 않았다. 당시 태자의 심경을 보여 주는 것이 글의 초두에 인용한 『숫타니파타』의 내용이다.

『숫타니파타』는 최초기의 불교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꾸밈없이 수수하고 평이한 말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간결하게 설해져 있다. 위의 인용은 『숫타니파타』의 주석서(Paramattha-jotikā)에 나와 있는 해당 게송에 대한 풀이를 참조하여 내용을 보충한 번역이다. 이하, 인용되는 『숫타니파타』는 같은 방식으로 번역할 것이다. 『숫타니파타』는 주석서와 함께 읽을 때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초두의 인용 게송에서, 석가모니는 출가하기 전의 고뇌에 대해 회상한다. 인도에는 우기와 건기가 있다. 비가 퍼붓는 시기인 우기 때 하천은 범람한다. 물고기들은 범람한 하천을 따라 여기저기로 이동한다. 그러다가 비가 멈추고 마른 날이 이어지는 건기가 오면 하천의 수량은 줄어들고 범람했던 하천의 곳곳에는 물웅덩이가 생기게 된다. 건기가 지속되면서 웅덩이의 물은 점차 말라 가고, 이 속에 갇힌 물고기들은 살려고 펄떡이며 서로 부딪친다. 

피할 수 없는 노老・병病・사死의 고苦 속에서 사람들도 웅덩이 속의 물고기처럼 애착에 몸부림치며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충돌하는 것을 싯달타 태자는 보았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무상한 것을 보고 그것을 피해 안주할 곳을 찾아보았지만 죽음과 괴로움이 깃들지 않은 곳을 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싯달타 태자가 본 것은 지적 호기심에서 남의 문제를 보듯이 본 것이 아니다. 애착으로 인한 갈등과 무상함, 죽음으로 대표되는 고가 자신의 문제가 되어 온몸으로 보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어찌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그가 자각한 고苦는 객관적인 고가 아니라, 온몸과 마음에 사무친 고이며 전인격적인 고였다.

피할 수 없는 눈앞의 고, 싯달타 태자는 이 문제와 오랫동안 씨름해 왔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29살이 되던 해, 마침내 그는 왕위와 가족과 부귀를 뒤로하고 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가의 길에 오른다. 출가하기 얼마 전에 출생한 유일한 혈육인 아들을 두고 떠나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출가 후 6년의 수행 끝에 그는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라는 존칭을 받는 부처가 된다. 고가 완전히 소멸된 경지에 이른 것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의해 불교가 시작된다. 불교는 어느 한 민족에만 통하는 민족종교가 아니라, 인류 전체에 통하는 보편적인 세계종교다. 2,500여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지혜의 등불이 되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평안의 경지로 이끌고, 뛰어난 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공헌해 온 불교. 이 불교의 시작은 고에 대한 사무친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불상 가운데 반가사유상이 있다. 대좌에 앉아 왼발 무릎 위에 오른발을 걸치고, 오른손 손가락을 뺨에 댄 채 명상에 잠긴 모습을 한 불상이다. 흔히 ‘미륵 반가사유상’이라 하여 미륵보살을 나타낸 불상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출가하기 전 고뇌하던 싯달타 태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5세기 말에 조성된 중국의 윈강(雲崗) 석굴 등에 있는 반가사유상에는 ‘태자사유상’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    고에 대한 자각이 사무칠수록 고에서 초탈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내일 있을 불교에 관한 시험을 앞두고 한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교재에 ‘무상無常이란 일체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라 적힌 것을 외우며 머리로 이해하고 정리한다. 1년 후 학생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부인과 사별하고 자신도 암으로 병상에 눕게 된다. 시험공부 하는 학생과 병상에 누운 아버지, 이 두 사람 가운데 무상을 진짜로 안 사람은 누구겠는가? 물론 그 아버지다. 

학생에게 무상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다. 반면에 아버지에게 무상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자신의 문제이고 자신의 일이다. 온몸에 파고든 무상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문제로서 무상을 느낄 때 비로소 종교적인 자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종교적 자각이 사무칠수록 그 문제에서 초탈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고에 대한 인식이 이론적이면 그 초탈도 생각만의 초탈에 그친다. 고가 자신의 문제가 되어 온몸으로 뼈저리게 자각되면, 고의 진정한 초탈로 가는 길도 열린다.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평가받는 경허(鏡虛, 1846~1912) 선사는 젊은 시절 강원의 강사로 그 명성을 날렸다. 그런 그를 선禪으로 전향하게 만든 데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경허 선사는 옛 스승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 천안 근처의 한 마을에 이르렀다. 그 마을은 콜레라로 떼죽음을 당하고 있던 터였다. 이 사실을 몰랐던 그는 천지를 분간할 수 없이 퍼붓는 폭풍우를 피하기 위해 하룻밤 묵기를 청했지만 동네 집집마다 경계하며 집 안으로 들이려 하지 않았다. 마을 전체에 퍼진 섬뜩한 분위기를 의아해하던 중, 한 사람으로부터 “지금 돌림병이 크게 성해 걸리면 죽는데, 어찌 객을 맞겠소?”라는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마을을 뛰쳐나왔다.

경허 선사에게 지금까지 남의 일로만 생각하던 죽음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누구보다도 불교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그였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던 불교는 죽음 앞에 무용지물이었다. 돌아와 강원을 폐쇄하고 학인들을 해산시킨 뒤, 화두를 들며 필사적으로 좌선에 매진했다. 그는 각고의 수행 끝에 마침내 죽음을 초탈한 깨달음에 이른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싯달타 태자와 경허 선사가 죽음으로 대표되는 고를 초탈할 수 있게 된 것은 고에 대한 사무친 자각에서 비롯되었다. 싯달타 태자의 출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중도에 포기하거나 변절하지 않고 마침내 고를 초탈한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고에 대한 자각이 그만큼 철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석가모니의 출가는 남의 출가가 아니다
삶이 고달프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 정상인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백치가 낫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를지도 모른다. 석가모니나 경허 선사는 애초부터 나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사람이고, 이분들이 이른 경지는 내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것이라고  미리 결론짓고 있는지도 모른다. 

석가모니의 자취를 알 수 있는, 단편적이지만 양적으로는 풍부한 내용들이 경전이나 율장의 일부에 삽입되어 전해져 왔다. 석가모니 입멸 수백 년 후, 이 내용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내용들이 첨가되기도 하면서 석가모니의 전기가 다양한 형태로 정리되어 출현한다. 『과거현재인과경』, 『불본행집경』, 『불소행찬』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문헌들을 보통 ‘불전佛傳’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전기’라는 뜻이다.

이 불전은 그 당시의 불교인들이 생각한 불타관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역사적 사실의 기록’과 ‘신격화된 서술’이 뒤섞여 있다. 앞에서 살펴본 싯달타 태자의 삶과 성향에 대한 언급은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석가모니뿐만 아니라 종교적 성인의 전기에는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초자연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19세기 말 무렵에는 초연적인 내용은 배제하고 합리적인 내용만으로 성인의 전기를 새로 쓰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문의 발달로 인해, 신격화되고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내용들은 그 시대의 독자적인 방법으로 종교적 진실을 표현한 것이므로,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그 본래적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문제는 불전에서 언급되는 ‘신격화된 서술’에서 불교가 지향하고자 하는 중요한 요소들을 읽어 내지 못하고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때는 부작용이 생긴다는 점이다. 우리는 떠도는 소문조차도 쉽게 믿어 버리는 경향이 강해서, 석가모니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성인으로 여기려 한다. 물론 석가모니가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될 자질을 보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어디까지나 피나는 수행의 결과 성인이 된 것이지, 애초부터 성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다. 

만일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었다면 불교는 우리와 무관한 종교가 되었을 것이다. 불교는 스스로 깨닫는 것을 중시한다. 석가모니가 우리와 다른 성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성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으며, 깨닫지 못한다면 깨달음을 중시하는 불교가 평범한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싯달타 태자의 삶을 좀 더 인간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그의 삶은 결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훌륭한 혈통에 재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교육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점만 보면 보통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보다 나은 삶이었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태자에게 고는 자신의 문제가 되어 버렸고, 그래서 어찌할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힌 끝에 결국 출가 수행자가 되었음을 감안하면, 그의 타고난 재능과 좋은 교육은 외려 보통 사람보다 고를 더욱 민감하게 느끼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런 그에게 생모의 죽음이라는 비통한 사건과 약소국의 왕자라는 서글픈 현실은 남들처럼 한때의 슬픔으로 쉽사리 잊히는 일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석가모니의 출가 의의는 따로 거창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겪어야 하는 현실적 한계와 고통, 그것을 자각하고 거기로부터 자유를 추구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고뇌와 출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고뇌, 우리 자신의 출가를 대변하고 있다.

고를 느끼지 못하는 백치를 부처라고 하지 않는다. 고를 초탈할 수 있는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고를 자각할 수 있기 때문에 고의 초탈, 곧 지혜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신 것이다.     

장휘옥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하여 석사 과정 졸업. 이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 화엄 사상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불교학개론 강의실 1, 2』, 『무문관 참구』(공저),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 등 1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중국불교사』 등을 번역했다.

김사업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한 뒤, 유식 사상을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 취득.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에서 불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공저), 『무문관 참구』(공저) 등이 있다.

위의 두 사람은 전문 수행자의 길을 걷기 위해 2001년 함께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의 오곡도로 들어갔다. 이후 세계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수행했으며, 2003년부터는 간화선 수행에만 전념하여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의 다이호(大峰) 방장 스님 지도로 1,000여 회에 이르는 독참을 통해 피나는 선문답을 나누며 수행해 왔다. 간화선 수행 전문도량 ‘오곡도 명상수련원’(www.ogokdo.net)에서 수행・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