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문명의 편리를
버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택한 장휘옥·김사업 교수. 그들의 맑고 깊은 눈이 인상적이다

‘생사진로 벗어남이 예삿일이냐,
척량골 바로 세워 부닥쳐 보라. 사무치는 뼈 속 추위 겪지 않고서, 코를 쏘는 매화향기 어찌 맡으리.’

장휘옥, 김사업 교수가
대학강단을 떠나 섬으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다.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일을 왜 하느냐’는 진심어린 걱정과 ‘학자의
길을 걸으며 수행은 못하느냐’는 등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의 결심을 막지는 못했다. 수행이야말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설해놓은 교리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라 확신했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반복된 생활의 틀을 멈추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수행에 전념하다보면 자신의 눈만 뜨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의 새로운 지평도 열 수 있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교수직 버리고 땅끝 섬으로 낙향

사실 두 사람은 다른 이들보다는 버리기에 익숙한 편이다. 장
교수의 경우 부산대 화학과 대학원까지 진학해 교수직이 어느 정도 확실시 되는 상태였지만 이를 포기하고 동국대 불교대학에 편입했었다. 이후 일본
도쿄대(東京大)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불교학자의 길을 걸어왔던 그가 이번에 내린 결정도 어쩌면 ‘평생 후회하지 않고 사는 길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으로 처음 불교학을 선택했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점은 김 교수도 비슷하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곧 회의를 느끼고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떠난 5년간의 유학생활. 이후 교토대(京都大)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시간 강사부터 시작해 어렵게 교수가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말과 행동이 점점 달라지는 자신을 느꼈고, ‘이렇게 되려고
불교공부를 시작했나?’라는 회의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수행자로서의 삶의 선택, 자신이 애지중지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했을
때 김 교수는 그 순간 이전의 자신이 죽었음을, 그리고 한편으로 무한한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렇게 해서 내려온 오곡도. 남해 통영의
끝자락에 있는 척포에서 다시 뱃길로 12분쯤 거리에 있는 이곳은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텅 빈 섬이었다. 그럼에도 인수한 폐교는 해돋이와
낙조를 모두 볼 수 있고, 사시사철 풍족하게 솟아나는 뛰어난 수질의 우물이 있는 천혜의 수행처였다. 처음 섬에 들어갈 때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폐교를 인수하고 얼마 되지 않아 섬에 전기가 들어온 것도 큰 행운이었다.

폐교 인수 직접 수행처로
개조

<사진설명>오곡도 명상수련원 전경
두 사람은 오래된 폐교를 수행처로 바꾸는 공사에
착수했다. 먼저 대형정화조부터 묻었다. 몇 사람 살지도 않는 섬에도 수천만원씩 들여가며 정화조 시설을 굳이 고집한 것은 국립해상 공원인 이곳
청정지역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공사에 필요한 모래, 자갈, 시멘트, 철근 등 모든 자재를 육지에서 들여와야
하는 것은 물론 해안에서 도량까지 좁은 벼랑을 따라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옮겨야 했다. 육지 공사비보다 10배가량 드는 비용은 그동안 교수생활을
하며 알뜰히 모은 돈과 아파트를 팔아 충당해 나갔다. 장 교수는 공사 지휘를 하는 동시에 인부들의 밥을 준비했고, 김 교수는 지게를 짊어지고
쌀이나 비료 등 짐을 날랐다. 난생 처음 지는 지게질에 양 어깨에는 굵은 생채기가 났다.

남이 하기 어려운 결단은 언뜻 멋지게 보일
수 있다. 설령 독한 마음으로 했던 결심이라도 새로운 상황과 접하면서 후회가 되기 쉽다. 특히 그 일이 힘들면 힘들수록.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전혀 후회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를 맞으며 지게 지고 오를 때, 인부들과 동네노인이 계속 어깃장을 부릴 때도, 해도 해도 공사가 끝이
보이지 않을 때도 말입니다. 아는 이들이 찾아와 우리 모습을 보고 애처롭게 여겼지만 오히려 그들이 안타까워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일에 매달리는 한편 예불과 수행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눈코뜰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세계구도여행을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2003년 3월 현장법사가 구법을 위해 그 척박한 사막을 건너 인도로 떠났듯이 그들도 세계 선지식과 수행도량 탐방에 나섰다. 임제종의
전통이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는 일본 고오가쿠지, 미얀마의 쉐우민센터, 플럼빌리지, 랍땐 최링 등 세계 유명 수행처에서 그곳의 최고 스승의 지도
아래 수행하고 인터뷰함으로써 각 수행의 핵심과 수행지도법을 온 몸으로 체득해 나갔다.

“우리가 만난 고승들은 역시 그 명성에 걸맞게
한결같이 존경스러운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교리와 수행 모두에 밝은 분들이었고, 점검을 통해 후학들을 철저히 지도하고 있는 점도 공통된
특징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이들 두 사람은 지난 8월초 두 차례에 걸쳐 여름수련대회를 개최했다. 다 얻은 다음에 나눌
것이 아니라 나누면서 찾자는 취지에서였다. 교수직을 그만두기 훨씬 오래전부터 선수행을 해온 이들은 수행에 필요한 교리지도를 하는 한편 구체적인
점검을 도입해 지도하고 있다.


세계 선지식 탐방…수련회도 개최

도시에서의 일탈과 외딴 섬으로의
정착. 잃은 게 ‘문명의 편리’라면 얻은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아침 햇살에 금빛 비늘처럼 부서지는 바다, 그 위로 낮게 하늘을 가르는
갈매기, 새끼 염소들의 정겨운 울음소리 등. 뿐만 아니라 민들레와 씨앗동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고, 도라지, 두릅, 달래는 물론 웬만한
시골사람도 구분하기 힘든 방풍나물까지 무쳐먹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깊은 내면의 세계에 흠뻑 침잠할 수 있는 것이 큰
소득이었다.

“불교가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와 상관없는 불교, 곧 죽은 불교입니다. 불교의 생명은 바로 이
순간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시골 아줌마와 아저씨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이들 두 사람. 섬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마냥 유독 맑게 빛나는 눈만이 그들이 깊은 선의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통영=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2004-08-18/767호>

입력일
: 2004-08-19 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