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살이(28)
오곡도

경상남도 통영시의 통영항 남쪽 19km 해상에 오곡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룬 섬의 모양이 까마귀를 닮았고 또 까마귀가 많이 서식하여 붙여졌다는 이름 오곡도. 내가 오곡도를 찾은 것이 금년 4월이었다. 이 오곡도에 명상수련원이 있고, 사실은 이 명상수련원을 찾아간 것이다.
모교에서 학장도 벌써 지냈고 이제는 정년까지 남은 몇 년을 교수로써 마무리 봉사하고 있는 친구 K와 작년 말 공직에서 정년퇴임한 또 한 친구 Y와 셋이서 금년 봄 식목일이 며칠 지난 어느 날 오곡도의 명상수련원을 찾아 갔다.
친구 K는 불교도인데, 그가 이 명상수련에 심취해 있다. 불교에 대해서 나는 꽤 오래 전에 도올의 ‘금강경 강해’를 한 번 읽었지만 뜻을 밝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지금은 한 구절도 머리속에 담겨있지도 않거니와, 하안거니 동안거니 하는 말 정도 알아듣는 외에는 상식에도 훨씬 못 미치는 문외한이다. 내가 크리스찬이어서 더욱 그러한 터이다.
나는 증조할머니께서 당시 야소교를 접하시고 영접(우리는 그렇게 표현한다)하신 후 대를 이어 그렇게 살아왔다.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이어오다 나의 대에 이르러 비로소 아들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이제는 나의 손자 대에까지 이르렀으니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나는 불교학생회 동아리에 들어갔다. 불교가 어떠한 것인지 알아보자는 의도였으나, 연구를 하자는 것은 아니었으니 동아리들과 같이 어울리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런데 한 사건이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김제 금산사로 3박4일의 수련회를 떠난 것이다. 3박째의 밤 10시부터 1080배를 하게 되었고, 중간에 달아나는 동아리들도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해서 다 마쳤다. 무릎 까진다고 이불을 깔아줘 그 위에서 절만 하는데 꼬박 네 시간 정도 걸렸고 새벽 2시쯤 끝나자 수고했다며 특별히 끓여 내온 라면 맛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침 예불시간에는 1080배를 다 마친 사람만 남겨서 수계식을 했다. 팔에 명주실 꼰 것 같은 것을 올려놓고 불을 붙였다. 내가 받은 법명은 혜성(慧聖)이었다. 집에 돌아가서 당연히 나는 혼이 났다. 아버지께서는 ‘신체발부는...’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제정신이가’ 하셨다.
기독교인은 산사람 외에는 우상이라 하여 절을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대상이 무엇이건 발복(發福)과 기복(祈福)에 목적이 있다면 그 대상이 바로 우상이 아닌가. 하나님을 향해서라고 하더라도 단지 발복과 기복에만 목적을 둔다면, 불경스럽게도 하나님을 우상에 지나지 않는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발복과 기복에 목적이 없다면, 비는 뜻을 담지 않았다면 우상은 없는 것이니 단지 물리적인 운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K가 오곡도 명상수련원에 대해 몇 번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원장과 지도법사 두 분이 다 박사로 대학 강단에서 불교를 가르치던 훌륭한 분들이고 이 분들이 선(禪)수행을 직접 가르치고 돕는다며, 특히 수련원은 별천지와 다름없다고 강조를 하였다. 명상수련이 아니더라도 한번 찾아보면 좋을 그런 곳이라고.
마침 봄이고 하니 수련원의 경관조성에 도움이 될 만한 나무를 준비해 함께 가서 식목을 하고 오자는 제안에 Y와 내가 따라나선 것이다. 우리는 후박나무를 비롯한 몇 가지 종류의 묘목을 구하여 싣고 통영대교를 건너 척포라는 곳까지 갔다. 그곳 무료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상시 대기 중인 대절선을 타고 12분정도 파도를 밀고 가서 오곡도에 도착했다. 배가 닿은 곳은 제대로 정비된 선착장은 아니었지만 그런 것이 오히려 멋스럽게 느껴질 만큼 섬이 기대했던 이상의 정취가 담긴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별유천지였다.
섬의 경관이 길게 얘기할 필요가 없을 만큼 좋았다. 누구든 직접 가서 확인해 볼 일이다(아쉽게도 이 섬이 단지 관광 목적만으로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명상수련원에 도착하여 참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인상의 장 원장과 김 지도법사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가져간 나무를 함께 열심히 심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장 원장께서 구입하여 수련원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알뜰살뜰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가꿔 놓았는지 그 땀과 노력이 느껴졌다. 다도해의 가운데 떠있는 작은 섬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앉아서 바라보이는 바다로 향한 전망은 그대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수련원이 있는 작은 마을도 언덕너머의 큰 마을도 사람은 다 떠나고 폐가만 남아서 흉물스럽기도 한데, 골목길과 위아래 언덕에 핀 동백꽃이 섬을 둘러보는 우리의 발길을 따라 붉은 꽃잎을 하나씩 뿌려주고 있었다. 수련원으로 돌아와서 곡차를 몇 잔 대접받고 우리는 섬을 떠나왔다. 언제든 다시 찾아와도 환영이라는 고마운 말을 새기고.
잘은 모르지만 명상수련이란 수행과정의 하나가 아닌가 싶고, 불교가 워낙 종교라기보다는 자기수행의 치열한 과정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여겨져 매력적인 점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곡도 명상수련원에 6박7일의 수행과정이 있는데 K는 몇 번을 참여하여 수행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여름에 Y도 K와 함께 6박7일의 수행과정을 마치고 왔다. 나는 그런 수행이 아니지만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나만의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여건상 내겐 너무 긴 6박이어서 3박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
위의 글은 충남 당진 지방지 "당진 뉴스"의 논설고문인 곽인호 선생의 고정칼럼 '평범살이' 28번째 수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