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름대로 수행을 많이 했다고 자부하는 불교 신자 한 분과 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화 도중에 우연히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평소 눈물이 많은 나는, 특히 친분 있는 사람의 장례식에 가면 하염없이 눈물이 나온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갑자기 생기가 나서 자기는 그런 곳에 가도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제행(諸行)이 무상(無常)하다"고 했는데 뭐가 그리 슬플 게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제행무상’이란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뜻이니,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죽는 것이 뭐가 그리 슬프냐는 것입니다.

그 분은 자신의 수행력을 내보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깨달은 자는 눈물도 없이 무감각해야만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그 분은 불교를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행(諸行)이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이로 인해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情)이 없는 냉혈동물과 같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음이란 우리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되찾는 것이므로, 수행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 순화되고 감정은 더 풍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의 상수제자였던 사리불과 목건련이 유명을 달리 했다는 비보를 받았을 때 매우 비통해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불교가 철학과 다른 점은,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는 데 있습니다. 다른 생명도 사랑해야 한다고 누구라도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생명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지적인 앎만으로는 사랑이 따르지 않습니다.

다른 생명을 내 몸처럼 느끼는 감성이 있을 때, 그들의 기쁨과 고통은 곧 나의 기쁨과 고통이 되고, 자연스럽게 내 몸처럼 그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 자연스러운 감성은 수행에 의해 생겨납니다.

깨달은 자도 인간적인 감성과 정 때문에 죽음에 대해 슬퍼합니다. 그러나 정 때문에 죽음을 슬퍼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깨달은 자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범부는 자신과 가깝거나 자신에게 잘 해주었던 고인에 대해서만 슬퍼합니다. 그리고 그 슬픔이 크면 클수록 슬픔의 그림자가 마음속에 오래 남아 슬픔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깨달은 자는 모든 생명의 죽음에 대해 슬퍼합니다. 슬퍼할 때는 온 천지에 슬픔밖에 없지만 그 슬픔이 그의 마음을 묶어 놓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번개가 쳐도 하늘은 멍들지 않듯이 말입니다. 슬픔의 순간이 지나고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할 때, 그에게는 슬픔의 그림자가 없습니다. 온 천지에 있는 것은 사람 만나는 것과 일만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