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레인맨’이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자폐증 환자와 정상인의 심리상태를 대비시킨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폐증 환자인 형은 동생과 헤어진 뒤 곧바로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자신만의 세계로 되돌아가 버리지만, 정상인인 동생은 형과의 끈끈한 정 때문에 헤어짐을 가슴 아파하며 몇 번이나 다음 만날 날을 형에게 기억시키면서 연연해 합니다.

가끔 삶이 고달프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 정상인보다는 차라리 자폐증 환자가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정상적으로 사고(思考)하는 인간이기에 겪어야 하는 마음의 고통을 잘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뒤, 벌 받을 생각이다 싶으면서도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란 것이 슬퍼 우울했던 기억이 납니다.

인도인들은 고대로부터 인간의 생존을 고통이라 인식하여 생존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해탈을 추구해 왔습니다. 석가모니도 인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인도적 특성의 영향 하에서 성장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의 생애에 대해 경전은 그를 신격화하여 태어날 때부터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성인(聖人)으로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석가모니가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될 자질을 보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석가모니는 어디까지나 피나는 수행의 결과 성인이 된 것이지, 애초부터 성인으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부터 성인이었다면 불교는 우리와 무관한 종교가 되었을 것입니다. 불교는 절대자를 믿는 종교가 아니라 ‘자각의 종교’이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는 것을 중시합니다. 석가모니가 우리와 다른 성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성인으로 태어나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으며, 깨닫지 못한다면 깨달음을 중시하는 불교가 평범한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석가모니의 일생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그가 출가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은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겠습니까?

석가모니의 생애는 먼저 ‘성도(成道)하기 전’과 ‘성도한 뒤’, 그리고 ‘성도하기 전’의 생애는 다시 ‘역사적 사실의 기록’과 ‘신격화 된 전설’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성도하기 전의 생애 가운데에서 ‘역사적 사실의 기록’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석가모니의 출가 의의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석가모니는 기원 전 5-6세기쯤 북인도의 히말라야 남쪽에 있는 카필라 바스투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석가족 출신으로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달타’라 했고,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석가족 출신으로서 ‘모니(牟尼)’ 곧 성자가 되었다는 뜻에서 ‘석가모니’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싯달타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 부인에 의해 양육되었습니다. 소년 시절에는 왕족에 어울리는 교육을 받고 모든 면에서 비범한 재능을 발휘했으며, 성장해서는 석가족의 처녀 야소다라를 왕비로 맞아들여 ‘라훌라’라는 아들도 얻었습니다. 당시 태자의 생활은 석가족으로서는 최대의 영화와 즐거움을 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릴 때부터 사색에 잠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태자가 일곱 살 정도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농부가 밭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흙덩이 속에서 꿈틀거리는 벌레가 나오자 새가 날아와 쪼아 먹었습니다. 이것을 본 태자는 약육강식의 추한 세태를 개탄하여 남몰래 염부수 나무 아래에 가서 조용히 명상했습니다. 태자를 찾아 나선 주위 사람들은 나무 아래 명상하는 태자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놀라워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카필라 성의 동·남·서·북의 네 문으로 나가서 차례로 늙은 사람·병든 사람·죽은 사람·출가 수행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앞의 세 사람을 보고는 인간 존재의 고통을 깨달았으며, 출가 수행자를 보고는 그것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기뻐했습니다. 그 뒤 태자는 모든 일에 대해 명상하는 습관이 생겼고, 결국은 인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스물아홉 살의 어느 날 밤,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그후 6년 동안 각고의 수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었습니다.

이상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성도 이전의 석가모니 전기의 뼈대입니다. 석가모니가 불교의 교주라는 점을 감안하여 그의 삶을 좋게만 해석하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출가동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부터 남달리 영민하여 인생에 대해 사색하기를 좋아했고, 사물에 대한 자비심이 많았기 때문에 인류 구제를 위해 왕족의 신분도 버리고 출가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영민하고 자비심 많게 태어났다고 해서 누구나 다 깨달은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도 그 시대와 장소의 환경이나 문화적 배경이 함께 따라 주지 않으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없습니다. 만일 석가모니가 인도라고 하는, 명상을 좋아하는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또는 그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거나, 석가족의 나라가 강대국의 압박에 고통 받는 약소국이 아니었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싯달타 태자의 삶을 좀 더 인간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그의 삶은 결코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왕족이라는 좋은 혈통에 재능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그에 어울리는 교육을 받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점만 보면 보통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보다 나은 삶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싯달타가 어릴 때부터 명상하기를 좋아한 점과 이 명상으로 인해 결국 출가 수행자가 되었음을 생각하면, 그의 천부적 재능과 좋은 교육은 외려 그 자신을 괴롭혔을 수도 있습니다.

그가 어릴 때부터 명상을 좋아한 까닭은, 타고난 재능과 좋은 교육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릅니다. 훌륭한 재능을 갖추고 명상과 사색이 깊어질수록 감수성도 예민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그에게 생모의 죽음이라는 비통한 사건은 남들처럼 한때의 슬픔으로 쉽사리 잊히는 일은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또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탈’이라는 인도적 사유방식도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에서 태자의 세속적 행복은 근본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마침내 그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뇌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 무렵 인도 청년들이 최고의 이상으로 삼던 두 가지 길, 곧 온 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느냐, 아니면 출가 수행자가 되어 정신세계의 지도자가 되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후자의 길을 택하여, 인간이기에 겪어야 하는 근원적인 고통을 해결하려고 출가하였다고 짐작됩니다.

석가모니의 출가 의의는 따로 거창한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겪어야 하는 현실적 한계와 고통, 그것을 자각하고 거기로부터 자유를 추구한 데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출가는 한 성인의 성스러운 일로 그치지 않고, 바로 우리 자신의 고뇌, 우리 자신의 출가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중에도 정신적 출가를 해야 할 것입니다. 행복은 많이 소유할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자유로울수록 커집니다. 내 몸 대우 없음에 바라지 말고 일이 지나갔음에 원망하지 맙시다. 매일을 출가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면 후회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