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불광」2015년 3월호)

나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연기 緣起 4) 

 

글 : 장휘옥/김사업     그림 : 신은숙

 

먼저 『유마경』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갠지즈강의 지류인 간닥(Gandak)강 하류에 위치한 바이샬리(Vaiśālī, 毘舍離). 이곳은 석가모니 당시 교통의 요충지로 자유로운 기운이 넘치는 부유한 상업도시였다. 자이나교의 창시자 마하비라의 고향이기도 하며, 온 세상에 매혹을 떨치던 유녀遊女 암바팔리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녀의 허리가 한 번 흔들릴 때마다 시바신까지도 자신의 아내인 여신들을 잊어버릴 정도로 매력적이었다는 암바팔리, 그녀도 결국 석가모니에 귀의해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 유마 거사의 말을 나의 말로 받아들일 때

석가모니는 바이샬리에서 많은 교화 활동을 펼쳤다. 열반에 들기 전 마지막 안거를 보낸 곳도 여기였으며, 열반에 든 후에는 사리탑이 세워지고 제2회 불전 편찬회의(結集)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바로 이 도시에 유마維摩라 불리는 장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높은 지혜와 넓은 덕으로 만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어느 날 그는 방편으로 병석에 누웠다. 국왕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고, 유마 거사는 그들 각자에게 맞는 가르침을 설하여 깨달음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일으키게 했다.

바이샬리 교외의 암바팔리 동산(菴羅樹園, 유녀 암바팔리가 기증한 땅)에서 법을 설하고 계시던 석가모니는 유마 거사의 병을 알고 제자들을 보내어 병문안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유명한 10대 제자와 보살들 모두가 자신들은 자격이 되지 않아 병문안을 갈 수 없다고 했다. 까닭인 즉, 예전에 유마 거사의 뛰어난 설법에 한마디 대꾸조차 할 수 없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문수사리보살이 어쩔 수 없이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암바팔리 동산의 법회에 있던 수많은 보살과 불제자와 천인들은 생각했다. “천하의 문수사리보살과 유마 거사, 이 두 위인이 대론을 벌이면 불교의 궁극적 진리가 설해질 것이다.” 그들은 문수보살의 뒤를 따라 바이샬리 성 안의 유마 거사의 방으로 찾아 들어갔다.

문수보살은 병의 차도를 물으면서 병의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유마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생이 병들면 내가 병들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낫습니다.

유마 거사의 이 말을 나와 관계없는 위대한 성인의 말로 넘겨 버린다면, 당신에게 불교는 이미 죽고 없다. ‘불교 따로, 나 따로’의 불교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형해에 불과하다. 유마 거사의 이 말을 나의 말로 받아들일 때, 불교는 당신의 일상에서 의미 있는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 이 몸의 시작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중생이 병들면 내가 병들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낫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웃집 사람이 로또에 당첨되면 배가 아프고, 그 당첨이 무효화되면 아팠던 배가 낫는 그런 사람들 아닌가? 우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유마 거사의 이 대단한 말은 연기를 체득體得한 자가 하는 말이다. 또한 유마 거사의 방에 모인 사람들이 알기를 기대했던 불교의 궁극적 진리이기도 하다.

왜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부터 살펴보자. 흔히 사람은 정신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나의 몸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부모님의 두 정혈이 합쳐져서 현재의 이 몸이 잉태되었다. 부모님의 정혈은 내 것이 아니니 처음부터 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부터는 나 혼자 힘으로 생명을 유지해 온 것이라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오늘 저녁 밥상에 올라오는 김치 한 쪽은 온 우주의 합작품이다. 배추가 자라는 땅은 아득한 옛날 바다 아래의 암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암반이 지금의 비옥한 토지가 된 것은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동안 태양, 비, 바람, 낙엽 등에 의해서였다. 배추 씨앗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했으며, 배추가 김치로 익기까지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참여했던가?

배추를 뽑아 다듬고 양념을 버무린 사람들의 노고. 그 김치를 보관하는 독을 만들 때 쏟아 부었던 그 누군가의 땀. 배추와 독을 운반한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의 열정, 그 자동차를 제조한 사람의 기술과 힘. 또한 그 사람들을 낳아서 기른 부모님들의 정성과 애환. 그 부모님의 부모님은 또 얼마나 정성을 다했던가? 

이 모든 것이 내 입에 들어온 김치 한 쪽에 다 들어가 있다. 김치 한 쪽이 이러하거늘, 내가 이때까지 먹었던 음식과 입었던 옷과 살았던 집은 또 어떠할까? 따라서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합작품이라 해야 맞다.

내 몸이 이렇다면 나의 정신은 어떠할까? 나는 지금 불교가 어떠한 것인지 안다. 나의 정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 불교를 내가 미리 알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불교가 내 정신의 일부가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존재들의 피와 땀과 은덕이 필요했던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해졌다. 실크로드는 예부터 중국과 인도・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해 주던 교역로였다. 이 길을 통해서 중국의 비단이 고대 로마에까지 전해지기도 했고,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에 전래된 것도 이 길을 통해서였다.

당나라 때의 중국 수도 장안(長安, 현재의 섬서성 서안西安)에서 서쪽으로 초원과 사막이 반복되는 지역을 한참 지나면 교통의 요충지 돈황에 이른다. 돈황 앞에 끝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 그 이름은 ‘타클라마칸’, 현지어로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땅’이란 뜻이다. 실크로드는 이 사막의 가장자리를 따라 난 험난한 길이었다. 

서기 400년경 이 길을 따라 인도로 구법을 떠났던 중국의 고승 법현(法顯, ?-?) 스님의 여행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장안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사막을 건넜다. 하늘에는 새도 없었고 땅에는 들짐승도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면 망망하기만 할 뿐 가야할 곳을 가늠할 수 없었다. 오직 해를 보고 동서를 구별하고 해골을 보고서 행로를 정할 뿐이었다. 때때로 열풍과 악귀가 출몰했으며 그것을 만나면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죽음을 불사하고 이 길을 왕래하며 불법을 전한 사람들, 그들이 원한 것은 부도 명예도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알고 싶었고 전하고 싶었던 불교를 위해 그들은 이 길을 걸었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불교가 다시 전해져 지금 내가 그것을 알게 되기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인연들이 필요했는지 생각해 보라. 그 인연 가운데 하나만 빠졌다 해도 나는 불교를 알 수 없었다. 

예불문에 “지심귀명례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라는 구절이 나온다. 서건은 인도, 동진은 중국, 해동은 우리나라를 뜻한다. 따라서 전체적 의미는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이 땅에 이르도록 진리를 전해 오신 모든 조사님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예를 올립니다.”이다. 이 구절 뒤에 숨은 배경을 알고 예불을 하면, 나에게 진리 한마디를 일러주기 위해 이토록 수많은 세월동안 온갖 정성을 기울인 인연들을 자각함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절절히 묻어 나온다.

그러므로 내 정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불교, 나아가서는 내 정신 전체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온 우주의 합작품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즉 “눈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고 혀도 없으며, 몸도 없고 마음도 없다.”는 애초부터 내 눈・귀・코・혀・몸・마음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는 뜻으로 보아도 된다. 그렇다면 나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

경전에는 연기를 나타내는 정형구로 다음의 구절이 자주 나온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此無故彼無). 

지난 호에서 예를 든 컵과 물 모양의 관계를 이 정형구에 대입시킨다면, 컵이 있어야 컵 모양의 물이 있고 컵이 없으면 컵 모양의 물도 없다는 것이 된다. ‘이것’이라는 조건에 의존해야만 ‘저것’이 있을 수 있다고 하여 ‘연기’를 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지금 서울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여 공기를 움직인 것이 다음 달 북경에서 폭풍우를 만들어 낸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지금 서울의 나비 날갯짓’이라면 ‘저것’은 ‘다음 달 북경의 폭풍우’이다.

이와 같이 전혀 관계없는 듯이 보이지만 우주의 모든 것은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연기적 사실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서정주 시인의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이다. 

가을에 핀 국화꽃과 봄에 운 소쩍새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 시는 봄에 소쩍새가 울지 않았다면 가을에 국화꽃이 피지 않았다고 노래한다.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봄의 소쩍새가 ‘이것’이라면, 가을의 국화꽃은 ‘저것’에 해당한다.

‘저것’이 나라면 ‘이것’은 무엇일까? 나 하나를 있게 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천 년 전에 만주 어딘가에서 산 할머니이다. 왜냐하면 그 할머니의 후손이 나의 부모님을 결혼하도록 소개시켜 주었고, 부모님 없이는 나는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강원도 산골의 이름 모를 농부이다. 그 농부가 가꾼 야채를 먹고 나는 살고 있다. ‘이것’은 앞으로 아프리카 밀림에서 산소를 내뿜을 한 그루 나무의 씨앗이기도 하다. 그 산소가 있어야만 앞으로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

우리 몸에서 심장이 없는 위장, 위장 없는 심장은 상상할 수 없다. 여기서 위장이란 소화기관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둘은 서로가 서로에 의존해야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연기적 관계이다. 위장이 음식물을 소화해서 영양분을 흡수하면 심장은 그 영양분을 피에 실어 온몸에 보낸다. 심장도 그 영양분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고, 위장도 피를 공급받지 못하면 존속이 불가능하다. 위장이 있기 때문에 심장이 있고, 위장이 없으면 심장도 없다. 그 역도 동일하다.

내 몸의 장기는 모두 이와 같은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 몸이다. 위장에 암이 생기면 결국 심장도 아파진다. 우주의 만물도 한 몸인 관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야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연기의 세계인 것이다.

네가 위장이라면 나는 심장이다.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네가 없으면 나도 없다. 위장이 아프면 심장도 아프고, 위장이 나으면 심장도 낫는다. 중생이 아프면 내가 아프고,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나도 낫는다. 이것이 연기를 체득한 유마 거사의 눈에 비친 세상이다.

내 몸 가운데 위장이 나인가, 심장이 나인가? 둘 다 모두 나이다. 둘 다 나이지만 위장은 위장이고 심장은 심장이다. 네가 위장이라면 나는 심장인 관계에 있다. 너와 나는 한 몸이고, 우주와 나는 한 몸이다. 그렇다면 나의 범위를 어디까지라고 해야 할까? 나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우주가 곧 나이고 내가 곧 우주다. 중생이 곧 나이고 내가 곧 중생이다. 

‘무연대비無緣大悲’라는 말이 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데도 베푸는 자비’를 뜻한다. 내 부모나 자식이기 때문에, 같은 종교를 믿기 때문에 베푸는 자비가 아니다. 상대가 누구든 그냥 베푸는 자비이다.

왼팔이 아프면 오른팔이 그냥 왼팔을 주무른다. “너는 해 준 것 없는데 왜 내가 주물러야 하나?” 하고 따지지 않는다. 주무르고 난 뒤에는 주물렀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다. 오른팔이 왼팔을 주무르듯 베푸는 자비가 무연대비이다. 이 일이 어째서 가능한가? 둘 다 내 팔이기 때문이다. 왼팔이 중생이라면 오른팔이 나라는 것이 연기의 세계요,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 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무연대비이다. 

유마 거사는 무연대비로 살았다. 그에게는 슬픔과 외로움과 절망을 겪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역으로 유마 거사와 같은 무연대비에 가까운 행동을 할수록 깨달음에 가깝고 영원한 평안과 대자유도 가깝다. 유마 거사는 “당신이 먼저 베풀면 나도 베풀겠다.”고 하지 않는다. 진리대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태도는 ‘중생이 아파도 나는 아프지 않다’는 ‘중생 따로, 나 따로’의 사고방식에서 하는 말이다. 

| 스승의 사리는 어디에 있는가?

어느 날, 점원 중흥(漸源 仲興, ?-?) 선사는 삽을 들고 법당 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사형인 석상 경제(石霜 慶諸, 807-888) 선사가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입적하신 스승 도오(道吾 圓智, 769-835) 선사의 사리를 찾고 있습니다.”

점원 선사는 도오 선사의 사리가 법당 안 어딘가에 흔해 빠진 돌처럼 뒹굴고 있다는 듯이, 삽을 들고 그것을 찾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석상 선사에게 자신의 수행 경지를 내보인 것이다. 그러자 석상 선사는 곧바로 말했다.

“온 천지에 넘실거리는 파도뿐인데 어디서 도오 선사의 사리를 찾겠다는 말인가?”

석상 선사의 마지막 말은 온 천지가 바로 도오 선사인데 도오 선사를 찾고 말고가 어디 있느냐는 뜻이다. 온 천지, 풀도 나무도, 비도 바람도, 어느 것 하나 도오 선사 아닌 것이 없다는 석상 선사의 선적禪的인 경지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나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인가?

장휘옥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화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하여 석사 과정 졸업. 이후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 대학원에서 화엄 사상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불교학개론 강의실 1, 2』, 『무문관 참구』(공저), 『새처럼 자유롭게 사자처럼 거침없이』 등 1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중국불교사』 등을 번역했다. 

김사업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한 뒤, 유식 사상을 전공으로 석사・박사 학위 취득.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공저), 『무문관 참구』(공저), 「유식설에서의 연기 해석」, 「선과 위빠사나의 수행법 비교」 등이 있다.

위의 두 사람은 전문 수행자의 길을 걷기 위해 2001년 함께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의 오곡도로 들어갔다. 이후 세계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수행했으며, 2003년부터는 간화선 수행에만 전념하여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의 다이호(大峰) 방장 스님 지도로 900여 회에 이르는 독참을 통해 피나는 선문답을 나누며 수행해 왔다. 간화선 수행 전문도량 ‘오곡도 명상수련원’(www.ogokdo.net)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