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평소 참선 점검은 하루 한 번씩 이뤄지지만 용맹정진 때는 하루 다섯번씩 독참이 진행된다. 사진은 방장 스님과의 독참을 기다리고 있는 수행자들.

로오하츠 오오젯신의 혹독한 수행을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처음부처 끝까지 모두 다 거뜬히 마쳤다.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미야모토 방장 스님과 각 수행자 사이에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루 다섯 차례의 참선 점검, 즉 독참(獨參)에 있다. 하루 다섯 차례이니, 4∼5시간마다 독참이 있는 셈이다. 평상시에도 독참은 하루 한 차례씩 있다.

독참 시간에 수행자는 방장 스님과의 일대일 선문답을 통해 화두에 대해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점검받는다. 방장 스님은 답변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할 뿐 아니라 능숙한 솜씨로 수행자를 분발시켜 수행에 더욱 매진케 한다. 바로 이 선문답을 통해 수행자는 깨닫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아 정진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사람의 경우, 머리 굴리는 습관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기 때문에 몸으로 풀어야 할 화두를 머리로 먼저 풀어내게 마련이다. 일단 머리로 어떤 해답을 찾았으면 그 답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그 답에 묶여서 더 이상 화두 참구에 진척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때 방장 스님과 하는 독참 시간의 선문답을 통해 머리로 푼 답의 허점을 알게 되어서 이를 뚫고 나가게 된다.

수행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문답 시간이 이렇게 많을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수행은 시간의 양도 중요하지만 수행의 질, 다시 말해 얼마나 화두에 몰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4∼5시간이 지나면 방장 스님 면전에서 자신이 화두에 대해 깨달은 바를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토해내야 하는데 어떻게 화두에 몰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루 다섯 차례의 선문답에서 제대로 답을 못했을 때 생기는 분한 마음과 다음 선문답 시간에는 올바른 답을 해야겠다는 각성도 화두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선문답은 선수행에서 굉장히 중요하며 역대 고승들도 그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선어록이란 것도 선문답을 모아놓은 것이다. 고오가쿠지에서는 매일 정기적인 일대일 선문답을 통해 각자의 선수행을 심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나의 첫 독참 시간 때 미야모토 방장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먼저 화두를 주겠다. 조주 스님의 ‘무(無)’자 화두이다. 내용은 알고 있을 테니까 더 이상 설명은 하지 않겠다. 지금까지 익힌 학문은 완전히 버리고, ‘무’ 그 자체가 되어라. 결코 쉽지도 않고 오래 앉아 있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몇 년씩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주일 만에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 일주일 만에 ‘무’를 꿰뚫고 가라. 머리에서 나온 답은 소용이 없다. 온몸, 전신으로 나온 답이라야 살아있다. ‘무’와 내가 둘이 아니라(不二), 하나가 되게 하라. 자신을 잊고, 만사를 잊고, ‘무’와 하나될 때까지 계속 좌선하라.”

6일 후의 독참 때는 다음과 같은 선문답이 있었다.

“무(無)를 보았느냐.”
“예.”
“이것이 무엇이냐?”
방장 스님은 옆에 놓인
주장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사자가 포효하듯) 무∼”
“으음, 이 요령 속으로 들어가 봐라.” 스님께서는 갑자기 요령을 뒤집으며 요령 속으로 들어가 보라고 하셨다.
“…….”
“아직 아(我)가 남았군.”

‘요령 속으로 들어가 봐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새로운 화두라기보다 ‘무자’ 화두를 다르게 표현한 많은 화두 중의 하나였다. 무자 화두 하나만 완전히 꿰뚫으면 그 자리에서 척척 답할 수 있는 무와 관련된 화두였다. 일본 임제종에서는 무자 화두에 대한 50여 개에 달하는 관련 화두가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무자 화두의 한 측면만 뚫었을 때 관련된 화두 하나는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관련 화두를 제시하면 그만 막혀 버리고 만다. 두 번째를 통과하고 난 뒤 세 번째에서 막힐 수도 있지만, 그 경지가 깊다면 네 번째, 다섯 번째…가 한꺼번에 뚫린다.

고오가쿠지는 야마나시켄(山梨縣) 엔잔시에 있다. 동경에서 엔잔까지는 기차로 약 1시간 30분 소요된다. 엔잔에 가까워지면서 산이 깊고 숲이 짙으며 물이 맑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옛날 엔잔은 일본인들의 이상향이었다. 일본의 여러 고문헌에는 보지도 못한 엔잔을 그리워하는 문구들이 자주 등장한다. 일본인들의 이상향이었던 조용한 전원도시 엔잔, 거기에 고오가쿠지가 일본 제일의 산 후지산(해발 3,776m)을 바라보며 600여 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고오가쿠지를 개창한 분은 일본 선종사에서 유명한 밧스이 토구쇼오(拔隊得勝, 1327∼1387) 선사이다. 장좌불와의 용맹정진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일본 전국 각지를 편력했다. 그러다가 52세 때 이전부터 뜻한 바 있던 엔잔에 들어와 초암을 짓고 두문불출하였다. 여기에 선사의 도를 흠모하여 스님과 일반 대중 800여 명이 운집하였다.

모이는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협소하자 제자의 권유로 장소를 옮겨 새로이 절을 지으니, 그것이 고오가쿠암이었다. 선사의 나이 54세 때(1380)의 일이었다. 조선 건국이 1392년이니 고려시대 끝자락에 해당한다.

절 이름을 ‘고오가쿠지(向嶽寺)’가 아니라 ‘고오가쿠암(向嶽菴)’이라고 지은 것은 도행이 쇠퇴해서는 안 된다는 선사의 단호한 결의 때문이었다. ‘암’이라 이름 붙여 수행에만 전념하는 도량을 표방한 것이었다. 고오가쿠암에 주석하면서 밧스이 선사는 스님들과 일반 대중의 교화에 힘썼다.

600여 년 동안 청정 도량의 가풍을 지켜온 고오가쿠지의 전통은 지금도 미야모토 방장 스님에 의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요즘도 양식이 떨어지면 스님들이 탁발을 나간다. 일본 TV 방송국은 고오가쿠지의 이러한 수행 모습을 촬영하고자 몇 차례 청을 넣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수행에 방해된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고오가쿠지에서 관광객을 볼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사진설명>로오하츠 오오젯신이 끝난 후 촬영한 기념사진. 맨 오른쪽이 김사업 박사.

일본 대부분의 본산급 사찰들의 재정은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공개하여 얻는 관람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엔잔시 당국 또한 관광객을 끌어들여 시의 수입을 올리기 위해 고오가쿠지의 문화재를 공개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으나 방장 스님은 단호히 거절하고 계신다. 국보를 비롯하여 다수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고오가쿠지 또한 개방만 하면 재정이 좋아질 수 있을 터인데….

중국 선종의 수행과 생활 규칙을 모아놓은 선원청규들을 통해 입증된 대로 고오가쿠지는 선의 전성기였던 송나라 시대의 선 수행과 선원 생활을 변형 없이 아직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이곳 선방에서 눈 빛 형형한 수행승들과 함께 좌선하고 있노라면 힘과 고요함이 하나가 된 순수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600년 묵은 이 기운이 오늘도 팔팔 살아서 운수납자들을 본래 자리로 이끌고 있다.

김사업(오곡도 명상수련원 지도법사) www.ogok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