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일본 도쿄인근의 임제종 사찰 고오가쿠지(向嶽寺). 미야모토(宮本) 방장 스님이 김사업 씨에게 물었다.

"무(無)를 보았느냐?"

"아직입니다". 순간, 방장 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네가 아직이라고 말하는 것은 화두를 참구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게야!" 방장 스님이 거칠게 요령을 흔들었다. '썩 물러가라'는 뜻이었다.

김 씨는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고 했다. "서너 시간 뒤면 다시 방장 스님과 마주 앉아 어디까지 뚫었는지 점검받아야 했어요. 죽기 살기로 화두에 매달릴 밖에요. 추위도, 시간도, 배고픔도 잊을 수밖에 없었지요."

일본 임제종 사찰에서는 평소에는 하루 3번, 집중수행 기간에는 하루 5번 방장 스님과 일대일로 만나 수행의 진척을 점검받는 '독참(獨參)' 전통이 있다. 중국 송나라 때의 선원 청규(淸規·선방 스님의 생활 규정)에서 유래하는 선불교의 오랜 전통이다.

경남 통영 앞바다의 작은 섬 오곡도에 '오곡도 명상수련원'을 세우고 간화선(看話禪) 수행 중인 김씨와 그의 대학(동국대 불교학과) 10년 선배인 장휘옥씨는 최근 '무문관 참구'(민족사)를 펴내고 31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각각 일본 도쿄대와 교토대에 유학한 뒤 동국대교수로 재직했던 장씨와 김씨는 10년 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출가승처럼 선수행에 뛰어들었다. 수련원에서 장씨는 원장, 김씨는 부원장이다. '무문관(無門關)'은 중국 남송시대 무문(無門) 혜개(慧開·1183~1260) 스님이 48개의 화두를 묶어낸 '간화선 수행의 교과서'로 불리는 책. '무문관 참구'엔 지난 10년간 1년에 최소 두달 일본 고오가쿠지에 머물며 900여차례 방장 스님과 독참을 통해 화두를 타파해온 경험을 함께 담았다.

 

 

두 사람은 '독참'에 대해 "학문은 독학할 수 있지만 참선은 혼자 힘으론 불가능하다. 독참은 제자가 올바로 화두를 들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도록 스승이 끊임없이 도와주는 간화선 수행의 훌륭한 전통"이라고 했다. "혼자 수행하다 보면 목적지인 서울에 오기 전 대구쯤에서 포기하거나 다른 데 가서 서울이라 착각할 수도 있어요. 스승으로부터 끊임없이 점검을 받으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일본 임제종의 '독참' 수행방식은 혹독하고 엄격하다. 방장은 집중수행 전 "수행하다 죽는 걸 걱정하지 마라. 죽으면 49재를 잘 치러주겠다"고 선포한다. 신발 놓는 방식, 선방의 방석 줄 맞추는 방식까지 다 규칙이 있다.

한겨울 냉방에 창문은 모두 열어놓고 방석 하나만 놓고 앉으면, 물컵의 물은 얼고 발은 동상에 걸린다. 독참을 거르기라도 하면 스무살 안팎의 선배 스님들이 '경책'으로 정신이 번쩍 들 때까지 '진짜 매질'을 한다. 경책은 죽비같은 대나무가 아닌 단단한 각목. 경책이 몇개 부러졌느냐가 치열한 수행의 증명이 되기도 한다.

"방장 스님과 일대일로 대면하는 자리는 한 마디로 선(禪)의 결전장이에요. 답을 못하고 나올라치면 당장에 몽둥이가 날아오고, 인간적 모멸감을 느낄 만큼 자존심을 짓밟죠. 너무 분해서 눈물을 흘리면, 방장 스님이 '아직도 '아(我)'가 남아있구나, 쯧쯧' 하세요. 그러면 정말 온몸에 전율이, 화두를 뚫고야 말겠다는 분심(憤心)이 일어나지요."

교수직도 버리고 오곡도에서 농사 짓고 자급자족하며 수행만 지도하는 두 사람에게 "지금은 괴로움 없이 행복한가"를 물었다. "불교에서는 '번뇌가 곧 보리(菩提)'라고 하지요. '지옥이 곧 천국'이라는 뜻입니다. 깨달음은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밥을 먹을 때는 100% 밥을 먹고, 밭일을 할 땐 100% 밭일하는 거지요. 이젠 싫다 좋다, 내 편 네 편으로 쪼개지 않고 집착을 버리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인 걸 조금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