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절밥은 꽤나 먹었지만
누가 불교가 뭐냐고 물으면 '어, 불자는 아니고 불교철학에 관심이 많아서요.'라고 얼버무리며
대답을 회피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정작 제 자신도 공부를 열심히 한것도 아니었고요.
그냥 불교가 무엇인지 알고싶은 마음에 이리뒤적 저리뒤적 책이나 몇글자 보다가 결국은
경험을 해 봐야만 의미가 있을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게으름이 앞서 직접적인 수행을 시도해보지는 않았죠. 그냥 언젠가는 언젠가는 생각만 하면서 한없이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참 감사하고도 묘한 인연들이 엮이고 엮여 오곡도로 오게 됩니다.


사실 오곡도에 같이오자고 도반님이 권유했을때는
'선수행? 어, 가서 지루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번뜩 들었지만 이내 '일단은 가서 해보기나 하자. 해 보고 안맞으면 그만두면 땡이고.'라는 생각이 뒤이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도반님을 따라 털레털레 통영으로 갔죠.

수련원에 도착해서는
묵언을 하면서 밥을 먹을때는 밥만 먹고 청소를 할 때는 청소만 하려고 노력하고
화두를 잡을때는 화두만 잡으려고 애를 쓰고 관세음보살을 외칠때는 관세음보살만 외치고
누우면 잠을 자고 바람이 불면 피부로 감각을 느끼고...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 처음 배를타고 오곡도로 들어갈 때 '일주일이면 좀 길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그 일주일이 휙 지나갔더라구요.

그리고는 배를 타고 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불교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수행은 해야겠다.
순간순간에 몰입하는 삶을 살고싶다.
모든것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고 행(行)함이 있어야지만 얻을수 있구나.
나는 노력이라는 것에 대비한 효율을 굉장히 따지고싶어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노력으로 결과를 이룰지 계산하지 말고 일단은 오직 행하자.

이 외에도 많은 생각들이 들었지만 크게 느꼈던 것들은 위와 같았습니다.
정말 좋은 인연공덕으로 큰 가르침을 받게되어 감사했고
좌선을 하면서, 다른 어떤것도 필요없이 그저 육신의 존재만으로도 평온함과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발심하여 수행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같이 수행을 하러 가자고 제안해준 김종서군, 타학교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오곡도와 연이 닿을수 있게 도와주신 민교수님, 독참으로 화두를 드는 법을 가르쳐 주신 원장님, 명쾌하고 가슴에 와닿는 강의로 불교에 대해 가르쳐주신 부원장님(깨달은 사람은 부드러운 블랙이 맛있는지 모를줄 알겠냐 말씀하시며 맛있다 ~~~~! 라고 외치시던 모습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도 자꾸 떠오르네요. 다음번 방문시에는 한손에는 반드시 부드러운 블랙을 들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맛있는 공양을 할수있게 해주신 보살님들, 그리고 또 많은 고마운 인연들께 감사합니다.


+덧) 마당을 쓸다가 저도모르게 쓸어버린 쥐며느리들에게 참회합니다 ㅠㅠ 자꾸 생각이나서 이렇게라도 참회를 해야할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