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막차였다.
나이 제한에서 인원 제한까지, 턱걸이의 연속이었다.
가느디 가는 인연의 끈을 부여잡고 집을 나섰는데, 이번에는 눈과 얼음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는 눈길에서 큰 원을 그리며 두 번을 돌았다.
집으로 돌아가자는 내게 남편은 더 해보자고 했다.
차에서 내려 모래를 뿌려가며 구불구불한 길을 걷는 듯 달려 정류장에 도착하니, 땀에 젖은 등이 우슬우슬 추웠다.
어지간히 긴장했던 모양이다.
시작이 반이라 했겠다....

척포에서 본 바다는 잔물결도 없이 고요했다.
수련회 마치고 돌아올 때 내 마음도 부디 그러하기를!

수련원 법당 앞 작은 화단, 초록잎들 사이에 살진 수선화 꽃망울이 보였다.
새벽에 뚫고 지나온 산골의 눈밭을 떠올리니, 하마 터질 것 같은 수선화 꽃망울이 전혀 다른 세상의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 새로운 세상을 한 번 살아보는 거야!
내가 주어진 찻잔은 7번이었다.
럭키 세븐의 일주일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둘째날 새벽, 작은 소동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아침예불이 5시에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4시 반이 꽤 자났건만 도량석 소리는 들리지 않고, 숙소의 사람들도 잠을 깰 기색이 없었다.
옆의 사람을 조용히 깨우고 법당으로 올라갔다.
법당 문은 닫혀 있었다.
"닫힌 문"의 기억이 떠오르며 긴장감이 살짝 밀려오는데,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문을 여신 김 원장님이 예불은 5시 반에 시작된다 하셨다.
"아, 내가 또 생각에 갇혔구나. 한 생각에서 잠깐 벗어나면 되었을 것을."

"닫힌 문"이라....
젊은 시절, 장기 출장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침에 식당에 가려고 호텔 방문을 여는데, 아무리 해도 문이 열리지 않는 거였다.
도어놉을 왼쪽으로 돌렸다가 오른쪽으로 돌리기를 수십 차례, 닫힌 문은 움쩍도 하지 않았다.
도어놉을 붙잡고 반 시간 넘게 씨름했건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프론트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곧 벨보이가 올라와 마스터 키로 문을 따고 들어왔다.
문은 소리도 없이 스르르 열렸다.
열린 문 앞에서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문은 안으로 열게 되어 있었던 거였다.
안으로 당겨야 열리는 문을 죽어라고 밖으로 밀었으니, 문이 열릴 리가 있겠는가?
내 생각에 갇힌 거였다.

오랜 세월 내 생각에만 갇혀살던 내가 조금씩 마음을 연 것은 농사를 짓고부터였다.
논에서 밭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무수한 생명들과 내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세상사에 대해서도 연민과 고마움을 자주 느끼게 되었다.
어느때부터인가 일을 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고 있었다.
전혀 새로웠던 이 경험은 내게 또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게 해주었다.

죽음과 대면한 등반에서 돌아오는 길에 룸비니에 들렀다.
그곳에서 나는 역사하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처음으로 만났다.
그 전까지 내게 부처님은 신화 또는 전설 속의 인물이었다.
그 분의 탄생지에서 나도 모르게 무릎이 꺾이며 인간 석가모니 앞에서 나는 한없이 울었다.
산길을 걸을 때면 부처님께서 저 앞을 걸으시는 것 같았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영취산 어느 자락에 나는 작은 돌멩이로 앉아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길로 들어서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화두를 드는 것은 막막했다.
無는 달아나고 달아나고, 또 달아났다.
망상이 성하니 졸음은 그래도 견딜 만했다.
지난 세월 그 긴 시간 동안 잘 훈련된 망상이 얼마나 많으랴.
이제라도 그렇게나마 앉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자꾸 앉다 보면 길이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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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째 날, 도착하던 날 보았던 수선화 꽃망울이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철 모르고 피어난 그 꽃을 보며 나도 그리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나도 철 모르고 피어나리라!
철 모르고 피어나 더욱 아름다운 꽃이 되리라."


두 분 원장님의 간곡함에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존경과 감사를 올립니다.
힘이 되어주신 선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양식을 만들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이같은 기회를 만들어준 젊은 친구들께 고마움과 우정을 전합니다.

럭키 세븐 합장 삼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