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도에 있을 땐 섬에 있어서 그런지 다른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육지에 와서 생각해 보니 잠시 짧은 여행을 한 기분 같습니다.

떠나는 일요일날 아침에 통영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까 몸이 춥기 시작하더니 4~5일 정도 감기 몸살을 앓았습니다. 다행이 며칠전부터 날씨가 풀려서 감기는 다 나았습니다.

어렸을적부터 줄곧 마음속의 불안함을 떨쳐내고 싶었습니다. 매일매일이 불안한 건 아니지만 불쑥 불쑥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날짜를 잘 못 알고 들어온 일요일날도 마음이 뭔가 불안해서 오곡도에 하루 일찍 들어 가지 말고, 근처 민박집에서 잘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중고 사이트에서 구매했던 불안함을 없애 준다는 미국에서만 파는 건강 보조제(?) 몇 개와 흔히들 말하는 힐링책 몇 권을 버렸습니다. 이제는 필요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 속에서 꿈틀 꿈틀 대던 불안한 마음은 저도 모르게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이 때 말하는 불안함이라는 것은 말로 잘 설명 못하겠지만, 예를 들어 어렸을 적에 좋아하는 친척이 집에 놀러온다고 하면 그 사람을 좋아하는데도 뭔가 만나는 게 불안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지만요. 

오곡도를 나와서 1주일간 생각해 보니 이러한 불안감은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혹시 잠깐 나타나더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집중수련회는 저에게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끔 빈뇨가 심해서 병원도 갔었는데, 제 느낌으로는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더 지켜보고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사회에서 느낀 점들을 게시판 등을 통해서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가끔 안 좋은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를 때는 일부러 눈을 감고 무자 화두나 우주를 떠올리려고 해요. (이게 잘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눈에 보지 않다고 했던 어린왕자, 꽃이 필 때 사실은 참 아프다는 가사가 나오는 부활의 '친구야 너는 아니'. 예전에는 그냥 머리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조금은 더 느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일요일마다 저녁 9시에 청소하는 시간이 있는데 오곡도에서 돌아온 날, 감기 핑계로 청소 하지 않고 누워 있었습니다. 청소한 명단을 조사해 가는데 룸메이트가 제 이름을 명단에 적어 놓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오곡도에서 배운 아뢰야식이 떠올랐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룸메이트한테 고맙다고 했을텐데, 괴로워 하는 제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서로 욕하면서 싸우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왜 그렇게 아직도 편 가르면서 싸우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오곡도에서 배운 유식을 떠올리며 뭔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렸을 적부터 어른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면 종자가 심어진건 아닐까.. 혼자 성낼 필요 없이 다른 사람을 더 이해 하며 살아 가야지 다짐하였습니다.

지난 번 수련회 때 같이 왔었던 종서와 며칠 전에 만났었습니다. 유난히 저한테 "앞으로 잘 살아 가려구요." 라는 말을 여러 번 하더라구요. 저도 앞으로는 막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으름, 나쁜 생각, 이기심이 들때마다 오곡도에서 받은 가르침 깊이 새기겠습니다. (사실 몰래 저녁 예불 녹음한 게 있는데 가끔 듣고 있습니다,,)

원장님! 사인해주신 책 너무 감사드립니다. 원장님, 부원장님 그리고 모든 보살님들께! 아름다운 1주일을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