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공포증으로 자살 시도

불안감 벗어나려 불교 공부

이론 무장해도 공포는 여전

교수 그만두고 수행자 변신

일본 임제종서 간화선 정진

900회 독참 끝에 인가 받아

재가자들에게 선수행 지도

‘어설픈 힐링’ 찾지 말고

주어진 순간 최선 다하면

성공하는 삶 살 수 있을 것

장휘옥 지음 이랑

통영에서 배를 타고 10분을 더 들어가야 갈 수 있는 오곡도에 수련원을 짓고 간화선 수행을 지도하는 장휘옥 원장. 어릴 때부터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았지만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대인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불안이라는 형체 없는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불교학을 공부한 것도 전문가가 되면 불안이 사라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선수행을 시작한 이유도 그 중 하나였다.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대인공포증도, 자유라는 말도, 명예도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주어진 삶을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장휘옥 원장을 지난 3일 조계사에서 만났다. 자존심 때문에 가족들에게조차 마음의 병을 말하지 못했던 그가 자신의 고통을 세상에 털어놓은 이유부터 물었다. 인터뷰 내내 “수행을 통해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다”는 얘길 반복했던 그는 “내 치부를 드러내 다른 이들의 아픔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선 수행을 지도하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멍든 사람들을 많이 봤다. 내 자신도 겪어봤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해도 될까’ 하고 망설일 때 내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면 공감대가 형성됐고 진실한 소통이 이뤄졌다.”

지난 시간 유독 치열하게 산 이유는 대인공포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전문가가 되면 불안장애나 대인공포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불교학을 공부했다. 실제로 그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안의 그림자는 엄습해왔다. 은사 인홍스님은 고교시절부터 그에게 출가를 권했다. 그 때는 “간화선수행대신 이론으로 꿰뚫어보겠다”고 생각했다.

“학위를 받으면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론은 알지만 실천을 못했다. 교리를 배우거나 안 배우거나 똑같은 상태라면 불교학을 공부한 의미가 없지 않나.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정신적 자유를 찾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렸다.” 그의 꿈은 원대했다. “대인공포증이라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한 삶, 정신적 자유를 얻는 것”이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남해의 외딴섬 오곡도로 들어가 수련원을 지었다. 교단에서 만난 김사업 교수가 도반으로 함께 나섰다. 수련원이 갖춰지자 세계의 수행처를 찾아다녔다. 운영시스템을 직접 체험하고 도입하려는 생각에서였다. “학교 동기 스님의 추천으로 일본 임제종 본산 고가쿠지로 갔다. 요즘으로 보면 보름간의 템플스테이였다. 거기서 독참을 알게 됐다. 제대로 수행하고 싶다고 스님께 청하니 수행처 탐방을 마치면 다시 오라는 말씀을 들었다.” 

수행처를 돌아보고 내린 결론은 자신의 기질에 가장 맞는 수행법이 간화선이란 것이었다. “수행법엔 그 나라 문화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프랑스 플럼빌리지는 유럽인에 맞춰있었고, 티베트불교에서는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부드러운 위빠사나는 동남아에 맞았다. 한중일 3국에서 간화선 수행을 하는 것도 풍토와 기질에 맞아서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고가쿠지로 돌아갔다. “스님들이 정진하는 곳이라 재가자 특히 한국인을 받아주지 않았는데, 교수직까지 그만두고 정진하겠다는 우리 의지를 높게 봐줘서 인지 수행을 허락해줬다.”

고가쿠지의 12월 용맹정진은 ‘운수납자의 목숨 재촉’이라 불렸다. “온기 한 점 없는 마룻바닥을 맨발로 걸어 다녔다. 공양을 할 때는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발은 동상에 걸렸고 무릎엔 굳은살이 박였다. 정진 전까지는 이가 딱딱 부딪히게 추웠지만 삼매에 들면 추위를 잊었다. 그러다 좌선이 끝나면 온몸이 덜덜 떨렸다. 냉동고 속 같은 그곳에서 정진하다보면 쨍한 느낌이 들고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하루 수면시간은 한 시간 여, 오전3시에 일어나 다음날 오전2시에 잔다. 그것도 방석 위에 앉은 채 담요 한 장 두르고 잠깐 눈을 붙이는 정도다. 예불과 식사, 청소를 제외하고는 하루 15시간 30분정도 정진한다. “정진이 치열하다고만 하면 극기 훈련과 무슨 차이겠는가. 거기서 지혜와 자비가 솟아나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다이호 방장 스님과 독참은 하루 다섯 차례다. 스승과 일대일 선문답을 나누는 시간이다. 장 원장은 2003년부터 간화선 집중수행에 참여했다. 방장 스님과 900회 이상 독참하며 인가를 받았다. “인가는 깨달았다기보다 스승의 도움 없이 혼자 공부하고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요즘 고가쿠지에 가면 공양주 소임을 맡아 정진대중을 외호하는 소임을 자처한다.

그는 “수행 전후의 차이점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원효스님이 깨달음을 무쟁(無爭)이라고 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과 다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집요하게 그를 괴롭히던 불안도 어느새 자리를 감췄다. “저를 옭아맸던 대인기피증이 고맙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출세를 택해 오만하게 살았을 것이 아닌가.” ‘잘 나가는 교수’라는 타이틀을 내던지고 간화선을 지도하는 지금의 삶에서 그는 자유와 행복을 느꼈다.

수련생들을 지도할 때는 불교가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선방에서 좌선보다 매순간 최선을 다해 집중해 맡은 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는 “좌선을 하는 이유는 집중력이 높이기 위해서고, 그러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내 일에 몰두할 수 있다. 그게 올바른 삶이고 선의 목표”라고 했다. ‘어설픈 힐링’도 경계했다. “삶이 고해라는 생각을 버리고 열심히 살다보면 그 속에 힐링이 있다. 여유부리다 자신이 이뤄놓은 게 없으면 우울증도 온다. 원하는 삶을 사는 게 성공이라 생각하면 열심히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꼭 돈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돈이 있어야 사람 노릇도 할 수 있지 않나. 직장에서 공짜로 일하는 게 아니니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열심히 하고, 그래도 영 아니다 싶으면 털고 나오는 게 맞다”며 ‘투덜이 직장인’들에게 일침을 놓았다.

 

장휘옥 교수는

부산대 사범대학 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국대 불교대학에 학사 편입해 본격적인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동국대 대학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가족의 반대에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도쿄대 대학원에 입학해 가마다 시게오 교수 밑에서 공부했다. 모친상으로 1주일 휴가를 받았음에도 5일 만에 학교로 돌아갔고, 유학생 모임에서 ‘상판대기 좀 보자’는 통첩을 보낼 정도로 악착같이 공부했다. 그 덕에 6년 반만에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동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일주일에 26시간씩 강의할 때도 있었다. 그 와중에 집필과 번역까지 했다. 2002년 교수직을 돌연 그만두고 오곡도로 들어가 수행전문도량을 세웠다. 그곳서 12년간 간화선 수행에 매진하며 수련생들을 지도하고 배추, 무, 고추 등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저서로는 <불교학개론 강의실 1, 2> <해동고승전 연구> <정토불교의 세계>와 <화엄경 이야기> <중국불교사1, 2, 3> 등을 번역했다.

[불교신문2983호/2014년2월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