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점이 자신의 거실에 10~20년 전부터 계속 걸려 있다고 하자. 그림 전문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오래전부터 그 그림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어 거의 눈길도 주지 않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새벽 여명이 밝아 올 때 그 그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고, 어스름한 노을빛에서 또 그 그림은 어떤 이미지로 다가오는지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사시사철 철이 바뀔 때마다, 또 그때그때 자신의 감정에 따라 그것은 어떤 모습의 그림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여태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림에 대한 자신의 이러한 태도를 스스로 책망할 사람이 있을까. 글쎄 거의 없지 싶다. 혹여 누군가 타인이 이런 자신을 책망한다면 금세 이렇게 반응할 것이 뻔하다. “피곤한 세상에 무슨 그런 것까지.”

그런데 여기서 한번 살펴보자. 우리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도 거실의 오래된 그림 대하듯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항상 함께하지만, 어쩌면 항상 함께하기 때문에 시시각각 자신이 무슨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고 사는지 관심이 없다. 욕망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고, 나와 내 것에 대해 어떤 시각과 태도를 견지하고 사는지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이 글에서 ‘있는 그대로’라는 말은 ‘어떤 목적이나 의도에 의한 꾸밈이 없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순수하게 알고자 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 없이, 그래서 어떠한 꾸밈도 없이 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표현한다. 이렇게 볼 때 어떤 것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때의 그것을 ‘있는 그대로의 그것’ 또는 그냥 ‘있는 그대로’라고 표현한다. 다만, ‘있는 그대로의 자기’라는 말이 고정불변의 자기가 있고 그것의 진실한 모습을 가리킨다고는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란 있는 그대로 보았을 때 드러나는 ‘자기라 불리는 것의 진실’이라는 뜻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자신의 문제를 밝히지 않고 인생사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마치 가려운 곳은 발인데 신발만 긁는 것과 같다. 몽둥이로 달을 치려고 하는 것 같아서 헛수고만 할 뿐이다. 열반이 가까워 왔을 때 석가모니는 아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아. 내 나이 이제 여든 살, 늙고 노쇠하였다. 내 육신은 마치 헌 수레가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난아, 이제 너희들은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에게 의지하라.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아라.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내 가르침대로 행하는 사람은 나의 제일가는 제자가 될 것이다.(『대반열반경』)”

유명한 ‘자등명自燈明ㆍ법등명法燈明’의 설법이다. 남이 아닌 자신을 등불로 삼고, 허황된 말이나 감언이설이 아닌 진실ㆍ진리를 등불로 삼아 그것에 의지하라 하신 것이다.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는 말은 진리는 먼 곳에 있지 않고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명시한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면 진리가 그대로 보인다는 말이다.

석가모니의 유언에 가까운 말씀이 이러한데도 정작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는 바도 없다.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오래된 그림 대하듯 한다. 대신 오직 나의 성공과 성취에만 관심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외면하고 자기중심적 성공과 성취에만 눈을 고정하여 그것을 쫓고 있다. 그래서 늘 나와 너,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고 그 우열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나는 남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한두 가지는 가져야 하고, 남의 생각이야 어쨌든 내가 옳다고 믿는 바는 성취해야 한다.

혹은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즉 자타에 의해 강요된 노력으로 겸손해지려고 하고, 적게 소유하고 검소해지려 하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남에게 양보하려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반대가 되는 행위보다는 사회적으로나 선악의 측면에서 더 나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월호에서 언급했던 유루선有漏善, 즉 번뇌가 묻어 있는 선은 된다. 그러나 차원을 높여 바라보면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다음의 예부터 짚고 넘어가야 이해가 수월할 것 같다.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진 어떤 사람이 걸핏하면 상대에게 화를 내었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상대에게 밝은 미소만 짓기 시작했다. ‘내가 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니 너를 가련히 여겨 웃어 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화에서 미소로 표정은 바뀌었지만 그 알맹이가 되는 마음 또는 그 사람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상대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은근히 깔보고 있는 것이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더 소유하고 자신의 생각만 관철시키려는 것은 분명 나의 성공과 성취를 얻기 위한 행위이다. 본인의 성공과 성취가 블랙홀이 되어 여기로 모든 관심이 쏠린다면 결코 ‘있는 그대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와 반대되는 겸손과 검소와 양보만 하면 있는 그대로가 보인다고도 할 수 없다. 겸손과 양보와 같은 행위들도 깊이 살펴보면 결국 나의 성공과 성취를 위한 수단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들 행위를 해도 있는 그대로는 보일 리 만무하다.

이와 같이 서로 반대되는 두 행동이 자신의 성공과 성취라는 동일한 이기적 목적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 두 행동은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똑같은 문제점을 갖는다. 위의 예시대로 상대를 얕보는 사람이 표정만 화에서 미소로 바꾼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성공과 성취를 쫓는 사냥꾼인 내가 정반대 색깔의 성공과 성취를 쫓고 있을 뿐 사냥꾼인 내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무언가를 쫓는 사냥꾼인 한, 있는 그대로는 보이지 않는다. 깨달음이나 대자유, 사회 헌신도 나의 사냥 목표로서 추구되고 행해진다면 이 또한 같은 문제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없으면 진리도 볼 수 없다. 따라서 깨달음이나 대자유, 진정한 자비도 불가능하다. 이상의 내용은 마조 선사의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마조(馬祖道一, 709?-788) 선사가 스승 남악(南嶽懷讓, 677-744) 선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부처가 되고자 열심히 좌선하고 있던 마조 선사 앞에서 남악 선사는 기와를 숫돌에 갈기 시작했다. 마조 선사가 그 까닭을 묻자 남악 선사는 거울을 만들려 한다고 대답했다. 기와를 아무리 갈아도 거울이 되지 않는 것처럼, 부처가 되기 위해 좌선한다면 결코 부처가 될 수 없음을 보인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두 행위가 다 문제라고 해서 이것도 저것도 전혀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를 업신여기는 사람이 무표정으로 있다고 해서 그가 바뀐 것은 아니다. 업신여기는 행위의 한 표현이 무표정일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를 업신여기고 있는 사람이 무표정을 짓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표정 그것 또한 사냥꾼인 나의 또 다른 사냥 목표일 뿐이다.

내가 무엇을 쫓는 사냥꾼이면 ‘있는 그대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얻으려고 하면 있는 그대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냥꾼이 되지 않으려는 것 또한 사냥 목표가 되니 사냥꾼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얻으려고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얻으려는 것이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억지로 사냥꾼이 되지 않으려고 할 필요도 없고, 얻지 않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 다만 무엇을 쫓고 얻으려 하고 있다면, 일체의 다른 생각을 끼우지 말고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그 사실만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 된다. 분노와 질투가 일어나는 순간, 그것을 비난하거나 정당화하지 않고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직시하면 된다.

어떤 것, 예를 들어 ‘슬픔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란 슬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이, 슬픔을 억누르거나 조작하려 들지 않고, 슬픔에 대해 어떤 생각과 말도 끼워 넣지 않은 채 이름도 모르는 뭔가를 처음 만난 듯, 그래서 ‘슬픔’이라는 이름도 없이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전적으로 그것하고만 함께 있는 것이다. 그때 있는 그대로의 그것이 보인다. 행동의 지침을 얻기 위해서라든가 심신 안정 등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보려 해서는 안 된다. ‘그냥’ 보는 것이다. 

요컨대 있는 그대로의 청소를 알려면 ‘싫다.’ ‘좋다.’ ‘청소를 하면서 청소를 초월하겠다.’ 등의 어떠한 잡생각도 없이 청소만 해 보면 된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 관련하여 이상에서 밝힌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있는 그대로는 성공ㆍ성취와 같이 원하는 무엇을 얻고자 하는 의도나 목적이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있는 그대로를 알고 싶다는 순수한 열정은 강렬해야 한다. 이 열정은 이기적 성취욕과는 다르다.

어떤 것에 대해 비난하거나 정당화하면 있는 그대로의 그것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어떤 것에서 도망가려 해도 보이지 않으며, 그것과 싸우거나 억누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것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작하는 순간, 있는 그대로의 그것과는 아득히 멀어진다. 이상의 내용을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란 ‘내’가 없이 보는 것이요, ‘관찰자’ 없이 관찰하는 것이다.

자신을 등불로 삼는다고 함은 시시각각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을 그때그때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다. 정해진 룰이나 테크닉에 맞추어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미리 내려진 어떠한 결론도 갖지 않고 생전 처음 대면한 것처럼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를 볼 때 지혜가 생긴다. 불에 직접 데어 본 사람은 결코 불에 손을 넣지 않는다. 인위적인 노력에 의해 손을 넣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한다. 손을 넣을까 말까 망설임도 없고, 손을 넣는 것이 옳으니 그르니 분석할 필요도 없다. 불에 대한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뜨거움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남이 시킨다거나 정해진 룰에 의해 손을 넣지 않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스로 체험해 보면 알겠지만, 있는 그대로를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일어난다.

어쩌다가 대도시에 나가 전철을 타는 일이 있다. 그때마다 전철 안의 많은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손안의 스마트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곤 한다. 스마트폰 속에 넘쳐나는 정보와 소식과 게임에 중독되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자신과 진리를 등불로 삼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소식과 게임을 등불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

선禪에 ‘회광반조廻光返照’라는 말이 있다. 바깥으로 향하는 마음을 되돌려 스스로의 참된 모습을 비추어 본다는 뜻으로,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자등명의 설법과 맥을 같이 하는 경구이다.

여느 때처럼 스마트폰에 중독의 눈이 갈 때 그 순간의 자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이것이 무엇이지?’라는 의문을 갖고 있는 그대로 보면 어떨까?

요즘 불교 신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알아차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말은 똑같은 ‘알아차린다’이지만 알아차리는 수준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알아차리는 집중도에서도 차이가 있겠지만, 무슨 이유로 어떻게 알아차리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만약 자신의 심신 안정이나 감정의 조절과 같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알아차리려 한다면, 위에서 밝힌 대로 있는 그대로는 알아차릴 수 없다. 또한 정해진 패턴이나 매뉴얼에 따라 어떤 것의 고정된 한 면만을 반복적으로 알아차린다면, 그것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둘 다 ‘관찰하는 내’가 있는 관찰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본인의 이해관계가 끼어들기 일쑤이고, 이전의 고정된 방식으로만 보려는 습성이 끈질기게 따라붙어 어느새 자기식대로 보고 말기가 십상이다.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이러한 어려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화두라고 할 수 있다.

화두는 기존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종의 시험 문제다. 따라서 화두에 대해 비난하거나 정당화할 수 없다. 모르는데 어떤 점을 비난하고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알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화두는 억누르거나 조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어떤 생각과 말도 끼워 넣지 못하게 만든다. 화두는 그야말로 이름도 모르는 뭔가를 처음 만난 듯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그것과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이다.

위에 열거한 비난과 정당화 등의 사항은 앞서 살펴본 대로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필요 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화두는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 볼 수밖에 없는 문제로 우리 앞에 선다. 시뻘겋게 불에 단 쇠붙이가 몸에 닿는 순간 “앗, 뜨거!” 이외에는 다른 무엇도 없듯이, 잡생각 없이 오직 화두에만 몰입하는 것을 ‘화두를 든다.’라고 한다. 화두를 드는 동안 기존의 고착된 사고방식과 자기중심적 관점은 불식되고, 마침내 있는 그대로 화두가 보이는 순간 화두는 뚫린다.

그러므로 화두를 지속적으로 들어 내공이 쌓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도 있는 그대로 잘 직시할 수 있다. 화두를 든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니 화두를 드는 마음으로 생활하면 눈앞의 하나하나가 있는 그대로 보이게 되는 길이 열린다.

오곡도에 들어와 참으로 많은 짐을 지게로 날랐다. 선착장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수련원까지 사시사철 날랐고 지금도 나르고 있다. 몇 년 전 큰 공사 때 포클레인이 동원되어 짐도 나르고 땅을 파는 것을 보고 그 힘의 놀라움을 생생하게 느낀 적이 있다. 내가 나르는 짐의 수십 배 되는 양을 기계 한 대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순식간에 싹 해치운 것이다.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인간 두뇌의 위대함을 절절히 실감했다.

요즘은 화두 또한 과학기술에 못지않은 인류 정신문명의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선종의 위대한 선사들은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 곧 ‘화두’를 어떻게 고안해 낼 수 있었을까? 그것도 이렇게 넓으면서 깊이 볼 수 있도록.

지금까지 유식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내용만 언급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유식에서는 능취能取와 소취所取가 없는 인식이 진실한 인식이라고 말한다. 능취는 주관을, 소취는 객관을 뜻한다. ‘내가 슬픔을 느낀다.’라는 문장에서 나는 능취에 해당하고, 슬픔은 소취에 해당한다.

능취와 소취가 없는 인식이란, ‘슬픔과 별개인 나’도 ‘나와 별개인 슬픔’도 없는 슬픔을 말한다. 이것은 쉽게 말해 나에 의해 채색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슬픔을 가리킨다. 나와 슬픔이 별개로 있어야 그 사이에서 채색, 즉 분별이 가능해진다. 별개인 이 둘이 없다면 분별도 없다. 이렇게 유식도 결국은 지금까지 언급한 ‘있는 그대로’의 인식을 진실한 인식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능취와 소취가 없는 경지를 선의 용어로 표현하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된다. 타성일편은 주관과 객관이 녹아들어 완전히 하나로 된 경지를 말한다. 이 글에서 말한 표현대로 하면 ‘내’가 없이 보는 경지다.

‘있는 그대로의 슬픔’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는 일부러 언급을 피했다. 각자가 체험해야 할 내용이기 때문이다. 체험하기 전에 미리 그 정보가 머리에 입력되어 있으면 체험에 방해가 된다. 모쪼록 직접 체험해 보시기 바란다. 체험을 해 보면 이전에 연재했던 공空에 대한 이해도 훨씬 깊어질 것이다.                                                                  

오곡도 수련원 부원장.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로 학사 편입한 뒤, 유식 사상을 전공으로 석사ㆍ박사 학위 취득. 일본에 유학하여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에서 불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국대 사회교육원 교수로 재직. 『길을 걷는 자, 너는 누구냐』(공저), 『무문관 참구』(공저), 「유식설에서의 연기 해석」, 「선과 위빠사나의 수행법 비교」 등이 있다.

김사업 부원장은 장휘옥 원장과 함께 전문 수행자의 길을 걷기 위해 2001년 대학 강단을 떠나 남해안의 오곡도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이후 세계의 고승들을 찾아다니면서 수행했으며, 2003년부터는 간화선 수행에만 전념하여 일본 임제종 대본산 향악사의 다이호(大峰) 방장 스님 지도로 900여 회에 이르는 독참을 통해 피나는 선문답을 나누며 수행해 왔다. 간화선 수행 전문도량 ‘오곡도 명상수련원’(www.ogokdo.net)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