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선배님이 선물하신 ‘무소유’를 시작으로 10여 년 전부터 법정 스님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글이 너무 아름다웠고 책을 읽으면 감동이 있고 마음에 평화로워져서 세상이 달리 보이기도 했다. 스님의 책들은 내 인생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이 고단할 때는 그냥 꺼내서 읽으면 만사가 괜찮아졌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그것도 잠시, 글의 힘은 일상 속에 묻혀서 금방 사라져 버렸다. 글이 생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 이다. 그리고 스님의 글을 읽어 갈수록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무엇이 정말 나를 이 먼 곳까지 이끌었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사람은 자신의 문제점을 점차 고쳐간다. 나도 세월의 교훈과 세상살이의 훈련, 그리고 좋은 글과 다양한 경험으로 조금씩 나아졌다. 시간은 사람을 조금씩 현명하게 하지 않는가? 화도 조금은 조절하고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기만의 팁도 생기고, 타인의 입장도 고려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해서 때로는 ‘내가 그래도 예전과는 달라지는 구나’라며 칭찬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만하게 말해서 내 문제의 한 7할은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다고 해도, 남은 3할은 느닷없이 나를 공격하여 절망에 빠뜨리곤 한다. 마치 딸기 과육의 까만 씨처럼 빼내려고 해도 도무지 빠지지 않아서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그냥 살아가기로 작정한다. 그 남은 3할의 설명 불가능하고, 터무니없는 나를 해결 안하고 남은 내 인생을 살기 싫어서, 그러기에는 내 삶이 너무 억울해서, 그 씨를 완전히 빼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행할 만한 곳을 조용히 찾다가 존경하는 분의 ‘오곡도에 가봐,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도 몰라.’하는 그 한마디가 나를 오곡도로 이끌었다. 편견도 싫어서 홈피도 살피지 않고 그냥 찾아오는 길 하나만 들고 고속버스 타고, 시내버스 타고, 배타고 왔다. 절.해.고.도.

좋은 강의 많이 들었지만 해박하고 명쾌한 강의에 우리는 법당 안의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박수를 마구 쳤다. 그 박수에는 수 백 명이 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참선은 직접 맛보아야 한다. ‘참선은 진리를 직접 체험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두고두고 내 머리에 남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시간을 온전히 100%로 살았다.

수련과정을 통해서 삶의 어느 순간부터는 접어 둔 질문들, ‘나는 왜 태어났나? 나는 왜 하필 여기에 태어났나? 나는 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는가? 나는 왜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 에 대해서 답을 얻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아직도 그 곳에서의 감동과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열정은 너무 흥분되는 것이어서 아직도 들뜬 기분이다. 이 감동과 열정이 내 삶 속에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 좀 지켜보아야겠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잠시 후에 사라질 것 인가. 비록 그리된다 해도 이곳에서의 경험은 부족함 없이 완결되었고, 모자람이 없이 꽉 찼으며. 순전했다.

이젠 매달리고 열중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 내 삶에 이 길로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훌륭한 강의로 불교 교리 공부의 지침을 얻었으니, 참선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노력해볼 작정이다.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